2012년 1월 28일 토요일

한국어 bac 응용문제 4와 예시답안



# 1.
A: 토요일에 우리집에 와, 같이 갈비 뜯자!
B: 밖에서 먹지, 뭘 번거롭게..
A: 굽기만 하면 돼!

A: 언니, 사골국 할 건데, 집에 오세요.
B: 사골국이라.. 말만 들어도 고마워!
A: 숟가락 하나만 더 놓으면 되는데요, 뭘..

# 2.
A: 주말에 뭐해?"
B: 특별한 일 없는데?"
A: 그날 갈비할 거야. 우리집에 올 수 있어? 네가 원한다면..(Si tu veux..)

A: 사골국할 건데, 집에 올래?
B: 별일은 없는데.. 글쎄..
A: 네가 원하는 대로 해.(Comme tu veux..)

# 1의 대화를 프랑스 식으로 고치면 # 2가 될 것이다.
식사 초대를 받았는데, 같은 한국 사람이
'네가 원한다면', '네가 원하는 대로'라고
마지막에 토를 달면, 우리는 어떻게 생각할까?

"뭐야, 초대할 맘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오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더러는 이렇게 헷갈릴 사람도 있을 것이다.

"시간되면 와." 정도의 말은 한국 사람들도 곧잘 한다.
하지만 "네가 원한다면", "네가 원하는 대로"  하는 식의 표현은
잘 하지 않는 것이 아직까지, 한국적인 정서인 것 같다.

물론 프랑스 사람들이 습관처럼 덧붙이는
'Si tu veux'(네가 원하면), 'comme tu veux'(네가 원하는 대로),
'Si tu es d'accord'(네가 동의한다면)는
상대방에 대한 존중 차원에서 하는 말이다.
마음이 차갑거나 인정이 덜해서가 결코 아닌 것이다.

초대하는 주체는 나지만 초대받는 사람이 초대에 응할 것인지
아닌지는 결정하게 된다. 그렇다면 상대방 스스로 선택권을
가지도록 하는 것이 이곳 사람들이 생각하는 '예의'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언어에도 저런 식으로
반영되었다고 보여진다.

상대방이 행여라도 부담을 가질까봐,
음식 준비의 번거로움을 가볍게 표현하는
한국 사람들이나 상대방이 초대에 좀더 편한 마음으로
응할 수 있도록 자유를 주는 프랑스 사람들이나
표현은 달라도 배려는 배려인 것이다.


<문제>
 
1. 한국인들은 손님을 초대할 때 곧잘 숟가락 하나만 놓으면 돼.”라고 말하곤 한다. 이 문장에 담긴 내재적 의미는 무엇인가?
 
 
 
 
 
2. 프랑스는 개인주의가 잘 발달한 나라이다. 여러분들도 종종 이런 생각을 하는가? 언제 이렇게 느끼는지 여러분이 경험한 사례와 그때의 느낌을 적어보자.
 
 
 
 
 
 
3. 한국과 프랑스에서 상대방을 배려하는 방식은 어떻게 다른가? 위 글을 참고하여 여러분의 생각을 발전시켜 보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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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예시답안입니다. 참고하세요.

1. 이 문장을 표면적으로 이해하면, 손님을 초대하는 일이 이미 차려진 밥상 위에 손님 숟가락 하나를 놓는 정도의 일처럼 가볍게 느껴진다. 하지만 이것은 한국인들이 으레 하는 말이고, 실제로는 아무리 간단하게 음식을 차린다고 해도 초대하는 입장에서는 시간과 수고가 들게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이 이렇게 말하는 것은 손님이 부담 없이, 자기 집처럼 편하게 생각하고 오도록 먼저 배려하기 위해서이다.
 또는 정말 친한 사이여서 특별한 반찬이 없어도 함께 나눌 수 있는 편한 관계인 경우, 이렇게 말할 수 있다. 

 2. 한국에서는 친구들과 자주 몰려다니고, 뭐든 함께 하는 것을 좋아했다. 영화도 같이 보고, 밥도 모여 먹는 것이 우리 또래에서는 일상이었다. 그런데 프랑스 친구들 중에는 혼자 자기만의 시간을 즐기고, 방해받는 것을 싫어하는 경우도 볼 수 있다. 특히 좋아하는 취미 생활이 있으면 외롭지 않으며, 굳이 주변 사람과 함께 하지 않아도 상관은 없다는 투다. 또 각자 먹은 것만 계산하는 '더치 페이' 습관도 개인주의의 소산인 것 같다. 그게 깔끔하고, 또 합리적일 수도 있지만 가끔은 "오늘은 내가 한턱 쏠게!"라고 말하는 한국식이 그립다.

3. 위 글에서도 나와있는 것처럼 한국과 프랑스 모두 상대방에 대한 배려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다만 방식이나 정도의 차이는 약간 있는 것 같다. 예를 들어 한국인들은 어떤 사람을 초대할 때 "꼭 와야 해.", 혹은 "웬만하면 꼭 와."라고 힘주어 말한다. 듣는 입장에서는 때때로 강요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이런 말은 친할수록, 또 상대에 대한 애정이 클수록 많이 하는 표현이므로 기분이 나쁘지는 않다. 하지만 정말 어쩔 수 없는 이유로 호의를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도 온다. 그럴 때면 미안하기도 하고, 거절하기가 부담되는 것도 사실이다.
 반면 프랑스식 배려는 다소 딱딱하고, 느슨하다는 느낌이 든다. 상대방에게 선택권을 주는 편이므로 짧게 이유를 설명하면 금세 수긍을 하는 식이다. 나는 한국인의 인정을 좋아하지만 때때로 거절하기 곤란한 상황이 되면, 프랑스식 배려를 떠올리게 된다. 반대로 누가 나에게 한 번만 음식을 권하고 말면, 괜히 섭섭한 것이 나도 영락없는 한국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한국어 bac 응용문제 3과 예시답안

"언니, 말 좀 놓으면 안돼요?"

처음 있는 일이 아니다.
학교 후배나 사회에서 만난 동생들에게도
나는 말을 놓지 못해 괜한 오해를 사곤 했었다.
"따뜻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곁을 주지 않아."
하지만 그보다 훨씬 어린 학생들에게도
개인적인 자리가 아닌 경우에는
늘 존대를 하는 편이었다.

어쨌든 만난 지 1년여의 시간이 흐르고,
가끔은 농담을 주고받을 정도로 친해졌는데도
여전히 호칭은 누구 씨이니 이들 입장에서는
답답하기도 할 것이다. 반말은 단순히 말을 튼다,라는
의미가 아니라 이 사람과 허물 없이 가까워졌다,라는
친밀감의 표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아는 것처럼 한국어에는 반말과 존댓말이 있다.
보통 나이가 어린 사람이 윗사람에게 존댓말을 쓴다.
간혹 군대나 학교, 사회에서 나이가 어리지만
선배 격인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존댓말로 예우한다.
안 그런 사람도 있었지만 직급이 높다고
나이 많은 직원에게 말을 놓는 사람도 보았는데
그래야 집단의 위계질서가 바로잡힌다는 논리였다.
나는 이런 예외적인 상황들이 한국 사회를
관찰하는 좋은 키워드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어제까지 누나누나, 하던 친구가
갑자기 우린 일적으로 만났으니 '00 씨'로
호칭을 바꾸겠다고 선언한 다음,
실제로도 그렇게 해서 황당했던 적이 있다.
호칭, 그리고 반말과 존댓말의 선택에서
또 하나 고려해야 할 것은  정서적인 '동의'인데
그 과정이 부드럽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 감정이다.

그럼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반말을 사용하는 것은 어떤가?
개인적으로 아랫사람을 잘 알고, 아랫사람을 존중할 마음이
예비된 경우, 문제될 것은 없다고 여겨지는 게 한국 분위기다.
단, 잘 알지 못하는 사이일 때는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처음부터 아랫사람에게 반말을 하는 것은
예의가 아닌 것으로 간주된다.

각설하고, 나의 오랜 의문은 이런 것이었다.


<문제>

1) 나보다 나이가 어리다고 해서 정신도 어리다고 할 수 있는가?




2) 반대로 나이가 많다고 해서 어른스러운가?




3) 존댓말을 사용하면 확실히 친해지는 데 한계가 있고, 서로를 어렵게 느끼게 될까?




4) 반말을 사용하면 금세 친해지고, 가깝게 느끼게 될까?





5) 말은 말뿐이지 않은가?  반말과 존댓말은 형식일 뿐이고, 중요한 것은 서로 존중하는 마음과 신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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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예시답안입니다. 참고하세요.


1) 나이와 정신연령이 꼭 비례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나이가 어려도 생각이나 행동이 어른 못지 않게 신중한 아이들이 있다. 반면 "나잇값 좀 해라!"라고 핀잔받는 청소년이나 어른들도 존재한다. 나이에 맞게 철이 든다면 '어른 아이'나 '애 어른'과 같은 표현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이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자기만의 가치관과 목표를 세우는 일과 타인을 배려할 줄 아는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2) 그렇지 않다. 어른들도 실수할 수 있고, 때로는 아이처럼 투정을 부리거나 신경질을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더욱이 '어른스럽다'는 것이 늘 좋은 것만도 아니다. 내가 아는 이웃 중에는 쉰을 넘긴 아저씨가 한 명 있는데, 그를 볼 때마다 늘 나이를 잊게 된다. 왜냐하면 나와 말이 잘 통하고, 종종 함께 게임도 즐기며, 게임에서 지면 화를 내는 것도 오히려 아저씨 쪽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모습을 보고, 철 없다고 느껴본 적은 한 번도 없다.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할 줄 아는 아저씨의 모습이 보통의 근엄한 어른들보다는 훨씬 자연스럽고 좋다.

3) 존댓말을 사용하는 것 자체가 두 사람 사이의 '벽'을 나타낸다고 생각한다. 말은 내용 전달의 수단이기도 하지만 대화자들 사이에서 친밀감을 나타내는 도구로도 쓰인다. 만약 편한 사이라면 말을 트고, 좀더 편하게 내 감정을 표현할 수 있다. 반면 존댓말을 사용하다 보면, 행동도 함께 조심하게 된다. 단어를 잘못 선택하지는 않았는지, 그것 때문에 상대방이 기분나빠 하지는 않을지 작은 것 하나도 신경쓰게 되는 것이다. 물론 존댓말을 쓰는 사람과 농담을 못하리란 법은 없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예의를 갖춰 말해야 하므로 함께 웃더라도 크게 웃기는 힘들 것 같다. 

4) 보통은 그렇지만 이것에도 조건이 있다. 예를 들어 한두 살 차이가 나는 사이라고 하자. 처음 만나서 아직 친숙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존댓말부터 시작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나이가 같은 친구가 아닌 이상은 말이다. 그런데 억지스럽게 반말부터 하게 되면, 말은 편한 형식을 띠는데, 심리적 거리는 여전히 먼 상태로 남을 수도 있다. 이것이야말로 불편한 관계라고 생각한다. 시간이 흘러 더 친해지고 나서 누구랄 것도 없이 반말로 이행하는 편이 훨씬 자연스럽다고 생각한다.

5) 형식을 갖춰 말하는 것이 곧 마음을 표현하는 일이기도 하다. 때문에 어른에게는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함부로 말을 놓지 않는 것이 좋고, 예의를 갖추는 편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특히 부모님께 반말을 하게 되면, 자신도 모르게 부모님을 무시하거나 상처주는 말을 하게 된다. 나의 경우,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에게는 존댓말을 사용하고, 어머니에게만 반말을 사용해왔는데, 종종 내가 생각하기에도 심하다고 느끼는 날이 있다. 의도한 것은 아닌데 꼭 어머니를 내 친구나 아랫 사람처럼 대한다는 반성을 하게 된다. 아무래도 존댓말을 사용하게 되면 조금은 조심하게 되는 것 같고, 이런 실수는 덜하게 된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존댓말을 사용하지만 어른을 공경하는 마음이 없으면 그것 역시 별 소용이 없다고 본다. 내용, 즉 '마음'을 담은 형식으로 존댓말을 구사할 때, 아름다운 대화도 가능한 것 같다.

한국어 bac 응용문제 2와 예시답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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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


원하는 것이 없을 때, 우리는 성분이 비슷한 식품으로
그것을 대체할 수 있다. 우리가 대체 식품을 선택하는
또 다른 이유는 그것이 '싸기' 때문이다.
버터가 없으면 마가린을 사고,
꿀이 없으면 설탕을 넣는다.
연어가 없으면 고등어도 괜찮다.

문제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쉽게 대체가 가능해질 때 발생한다.

다른 사람으로도 대체가 가능하다면
굳이 그 사람일 필요가 있겠는가?

과거에 당신은 누군가에게 없어서는 안 될,
절대적인 존재였다.
하지만 이제는 다른 것과 바꿔치기해도 될 만큼
당신의 가치는 하락했다.
당신은 더 이상 매력적이지도 않으면서 비싸고,
가격에 비해 제값을 해내지도 못한다.
대체가능해진 것이다.

제발이지 나를 인간적으로 대해줘!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상품이 소리친다.


<문제>

1. 현대 사회의 어떤 면을 비판하고 있는 글인가?



2. 밑줄친 부분에 대하여 자유롭게 코멘트하시오.





3. 여러분도 글에서처럼 '사물이 되었던' 경험이 있는가? 사례와 그때의 느낌을 적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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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예시답안입니다. 참고하세요. 

1. 인간 관계의 비인간화, 혹은 상품화에 대하여 비판한 글이다. 사물과 인간은 그 가치를 비교할 수가 없다. 인간은 사물처럼 거래되거나 교환, 혹은 쓸모가 없어졌다고 해서 함부로 버려지는 일회성 소모품이 아니다. '인간존엄성'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은 우리의 이상을 따라주지 않는다. 어떤 사람을 판단할 때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그 사람의 인품이나 진실성, 성실한 태도라기보다는 능력이나 외모, 학벌, 무엇보다 그 사람이 나에게 이익을 줄 사람인지 아닌지에 더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이렇듯 서로가 서로를 이용 가치에 따라 판단하고, 사귀다 보니 누구랄 것 없이 언젠가는 외로워지고, 소외를 느끼게 되는 것 아닐까 생각한다.  


2. 이런 경우는 현대 사회에서 아주 많은 예를 찾을 수 있다. 회사를 살린다는 명목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행해지는 대기업의 구조조정이 그러하고, 사랑보다는 조건을 찾아 배우자를 찾는 풍토가 그러하다. 전에 TV에서 '커플 매니저'라는 직업에 대해 소개하는 방송을 봤다. 그런데 거기에 나오는 사람들의 발언이 놀라웠다. 배우자의 조건으로 남자는 여자의 외모를 꼽았는데, 한 남자가 여자의 신체 부위를 아무렇지도 않게 여자 연예인의 그것과 연결시켰기 때문이다. 눈은 누구, 코는 누구 식으로 말이다.
 그리고 남여할 것 없이 새로운 사랑을 만나면 미련 없이 현재 애인과 헤어지겠다고 말했다. 특히 조건이 좋은 사람을 만나게 되면, 틀림없이 마음이 흔들릴 것이고, 그 중 절반이 넘는 사람들이 새로운 사람을 선택할 것이라고 대답했다. 인간 관계가 늘 좋을 수만은 없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다른 사람을 찾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사람도 언젠가는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될 날이 올 것이다. 그리고 과거에 자신이 한 행동이 얼마나 경솔하고,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는 일이었는지 깨닫게 될 것이다.
 우리는 절대로 한 사람을 '사람'으로만 대해야 한다. 사람을 내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나, 나를 더 빛나게 해줄 액세서리로 보아서는 곤란하다. 또한 부족한 나라도 나만의 가치가 있는 것처럼, 내가 보잘 것 없다고 낮추어 보는 사람에게도 나보다 나은 면이 있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며칠 전, 거리에서 집 없는 아저씨에게 다가가 샌드위치를 주며 용기내라고 볼에 뽀뽀하던 아줌마가 생각난다. 그 분에게는 아저씨에게 나는 냄새도, 더러운 옷도 장애가 되지 않았다. 그날 아줌마가 본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아마도 사람,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한 사람에 대한 애정뿐이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3. 지금은 멀어진 친구가 한 명 있다. 프랑스로 전학을 와서 불어도 잘 못하고, 친구 사귀기도 쉽지 않을 때, 내게로 와서 함께 밥을 먹자고 먼저 말해준 친구다. 마침 집도 가까워서 자주 어울리게 되었다. 그런데 이 친구는 성적 욕심이 유난히 컸다. 그 아이는 모든 과목을 골고루 잘하는 편이었는데 수학만 약간 못했다. 그런데 나는 수학과 과학 과목에서만 점수가 잘 나오고, 불어는 정말이지 초급 수준이었다. 그렇게 해서 서로 취약 과목을 도와주기로 했는데,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성심껏 가르쳐줬지만 친구는 번번이 다른 일로 바빠서 수업 준비를 못했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한두 번은 그렇게 넘어갔지만 계속 그러자 약간 화가 났다. 괜히 나만 손해보았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마음이 들기 시작하자, 전처럼 그 친구를 대할 수 없었다. 
 요즘도 모르는 수학 문제가 있으면, 나에게 오곤 한다. 대답은 해주지만 그럴 때마다 기분이 좋지가 않다. 나는 도대체 이 친구에게 무엇인가라는 의문이 들어서이다. 길에서 만나도 그닥 반가운 기색도 없고, 몇 달씩 연락도 없다가 자신이 필요할 때만 말을 걸어오는 친구...  '친구'라는 이름이 무색하지 않으려면 나를 다르게 대해줬으면 좋겠다. 어떤 사람에게 필요한 사람이 된다면 그것은 행복한 일이다. 하지만 마치 물건처럼 필요할 때만 소모되는 사물 같은 존재가 되고 싶지는 않다.











   


한국어 bac 응용문제 1과 예시답안

본문에 사용된 텍스트와 문제들은 자체 제작한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따로 필자가 있는 경우에 한해 지시를 할 것이며, 이 자료들은 한국어 bac을
공부하는 학생들과 가르치시는 선생님들께 개방되어 있습니다.

자유롭게 사용하시고, 문의사항이 있으시면 멜 주시기 바랍니다.
-> kundera1929@gmail.com

간혹 한국어 bac 기출문제에 대한 답안을 입수할 수 있는지,
묻는 분들이 계시는데요. 아쉽지만 공개된 답안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문제를 못 풀 것은 없지요...
풀다가 헷갈리는 게 있으시면 문의주시기 바랍니다. ^^


한국어 bac 응용문제


1. 말과 글

음치, 박치, 길치, 몸치.. 별치들이 다 있다.
나는 최근 들어 이런 생각을 한다.
말치와 글치도 존재한다고..

나의 경우, 말보다는 글이 훨씬 편하다.
말은 머릿 속으로 수없이 연습을 해도 잘 안 된다.
그런데 나와 반대인 경우도 많다는 것을 알았다.
그동안은 글도 노력하면 어느 정도 개선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최근에는 좀 생각을 달리하게 됐다.
노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원래 성향이 글보단 말인
사람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자는 쪽으로..

외우는 과목은 잘하는데 죽어라 계산은
못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수학은 귀신인데
역사처럼 외우는 과목은 젬병인 사람이 있는 것처럼
글치도 말로는 자유롭게 표현이 되는데
종이에 쓰려면 머리가 하얗게 되는 사람들이다.

수학 문제를 앞에 두고 명상에 빠지는 아이가 있다고 치자.
이 아이는 계산의 필요성 여부를 놓고 먼저 고민한다.
왜 영희는 10을 가져야 하고, 철수는 2를 가져야 하나..
계산이 될 리 없다.

지리 책을 보면서 구토 증세에 빠지는 아이가 있다고 하자.
그 매력적인 땅덩어리도 빽빽한 글자와 도표의 나열에 지나지 않는다.
상황이 이 정도라면 아무리 노력을 기울여도 쉽지는 않다.
그리고 나는 이 숫자가 결코 적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글치에게 글을 쓰게 하는 시험은 어떤가.
혹은 말치에게 발표 시험은 어떤가.
더욱이 그것이 인생을 결정짓는 중대한 시험이라면..
너무하지 않은가?


2. 뜀틀

초딩 때 철봉이나 뜀틀 앞에서 느꼈던
불안과 공포는 그후로도 종류를 바꿔 재현됐었다.
치기 어려운 피아노 악보,
내일 시험을 위해 외워야 할 수많은 공식들,
피하고 싶은 사람,
내키지 않는 사과,
첫 수업의 긴장감,
그리고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경제적 압박 등.

하여튼 몇 개는 그냥 손을 놓았고,
몇 개는 울며 겨자먹기로 했고,
뜀틀은 나중에 아주 잘했던 기억이 난다.
방과 후에도 한 시간씩 연습을 했으니 당연하지.
못하던 애가 잘하니까 체육 선생이 한 번 더 해보라고
애들 앞에서 독무대까지 마련해줬었다.
, 그럴 필요까지는 없다니까요..
날다람쥐처럼 날았다.
근데 날아도 너무 나는 바람에..
땅바닥에 엎어져서 또 흙을 먹었던 기억.
거보라니까요.

아무튼 못할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마다
포기하는 편이 속 편하겠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인생이 꼭 뜀틀 같다는 생각을 한다.
분명히 넘긴 넘었는데 그건 우연인 것 같고,
다시 넘으려니 너무 힘들기도 하거니와
이제는 귀찮은 거지.

누구는 선택의 여지가 없으니 뜀틀을 넘어야 한다고 하고,
누구는 뜀틀 따위는 무시하고, 지나가라고 하고,
누구는 모든 건 다 그러니까 하기 싫은 뜀틀을 하도록
프로그램 짠 사람의 잘못이라고 한다.
전인교육, 멀티교육..
말은 좋은데, 다 잘해야 하고,
다 패스해야 하는 학생들은 얼마나 힘든지 아느냔 말이지.

좋아하는 것 하나만 잘해도 사람 구실할 수 있는
학교를 만들어달란 말이지.
그게 기능인 교육은 아니잖아?


3. 기다리다 보면

누군가 우리 아이가 이래요,라고 말하면
속으로 많이 민망하다. 지금이야 어울리지 않게
선생 노릇을 하고 있지만 나야말로 문제 학생이었기 때문이다.
1년에 한 번 있는 어버이날이 나에게는 속죄의 날이다;

듣다 보면 그 시기에 다 겪는 일이고,
지나갈 일인데, 아이도 부모된 입장에서도
홍역을 앓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서로가 서로를 분리할 수 없으니 생기는 전쟁이고,
그게 또 쉽게 분리가 되면 사랑이겠나, 하는 생각도 든다.

피곤하고 소모적일 수도 있지만 그것 역시 사랑의 한 모습이고,
과정은 과정인 거다. 점프해서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고,
인정해주는 단계가 되면 좋으련만, 역시 시간이 약이다.
어느 정도 지치고, 포기가 되어야 평화도 가능해진다.

이제 막 사춘기가 시작된 아들을 둔 친구가 말한다.
몰라, 어쨌든 죽이지는 않았어.
나 아직은 창문에서 뛰어내리지 않았다구.
괜찮아, 나는 열 배는 더했어.
내가 위로랍시고 해준 말이다.

= 문제 =

1. 세 지문은 공통적으로 무엇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가?



2. 지은이는 왜 인생을 뜀틀로 보았나?
 


3. 밑줄친 내용은 어떤 의미인가? 풀어서 설명하시오.



4. 같은 수학문제를 푸는데 뿡뿡이는 1분이 걸리고, 끙끙이는 2시간이 걸린다.
최근 끙끙이는 지긋지긋한 수학을 포기하고, 좋아하는 그림이나 열심히 그리면 어떨까 생각하고 있다. 끙끙이의 선택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는지 여러분의 의견을 쓰시오.
 


5. 여러분이 경험하고 있는 프랑스 교육 시스템에 대하여 각자의 의견을 쓰시오.






(3, 4번의 경우, 정해진 답이 없습니다. 여러분 생각을 자유롭게 쓰시되, 의견에 대한 이유를 꼭 적어주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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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시답안입니다. 참고하세요.



1. 세 지문은 공통적으로 교육에 대하여 서술하고 있다. (교육 시스템, 교육 제도, 교육의 어려움, 잘못된 교육의 문제점 등의 키워드가 들어가면 OK)

2. 뜀틀은 인생에서 마주칠 수 있는 수많은 난관을 상징한다. 지은이는 어릴 때 뜀틀 앞에서 느꼈던 공포와 불안을 인생 속에서도 동일하게 느끼는데, 장애물을 뛰어넘어야 하는 뜀틀 운동처럼 인생도 풀어야할 문제들의 연속으로 보는 것이다. 설령 운좋게 문제를 해결하더라도 또 다른 난제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으며 따라서 인생은 필연적으로 어려움을 해결해나가는 과정이며, 그것을 뛰어넘음으로써 성숙해진다는 것을 지은이는 말하고 있다.   

3. 첫 번째 누구는 현 교육제도를 비판없이 수용하는 사람들을 이른다. 이들은 좋든싫든 개인이 거대한 교육 시스템을 바꿀 수 없다면 거기에 적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 누구는 자신이 원하는 바를 현 교육제도보다 우선시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정해진 시스템에 상관없이 원하지 않으면 따르지 않는다. 하지만 제도와의 충돌은 불가피하며, 시스템에 저항하는 개인이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세 번째 누구는 개인이 어떤 선택을 하기 이전에 제도 자체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한다. 이를테면 미비한 교육제도가 야기하는 문제점들을 먼저 문제삼고자 하는 것이다.

* 4번과 5번의 경우, 정해진 답이 없으므로 답안의 여러 방향과 흐름 정도만 안내합니다. 참고들 하세요.

4. '수학을 포기하는 편이 낫다'의 경우 - 어느 정도 노력했는데도 안 됐다면 수학을 계속 공부하는 것은 시간 낭비이다. 차라리 잘하고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는 편이 학습의 효율면에서도 그렇고, 결과면에서도 풍성한 결실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다. 누구나 좋아하는 것을 하면, 잘하게 되고, 이 분야에서 성공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특히 끙끙이 개인의 행복을 위해서 그림을 선택하는 편이 낫다고 본다. 흔히들 인생은 한 번뿐이라고 한다. 그림에 대한 열정과 신념이 있다면 끙끙이는 화가가 되기 위해 과감히 수학을 포기할 수도 있다...
    
'수학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의경우 - 두 시간이 걸렸지만 수학문제를 풀어냈다면 끙끙이는 끈기가 있는 아이이며, 수학에 아예 재능이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공부하는 방법이나 요령이 잘못되지는 않았는지 먼저 확인해볼 일이다. 만약 그 문제를 해결한다면 수학 문제 푸는 시간을 얼마든지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지레 수학을 못하는 과목으로 규정해버리고 포기한다고 생각해보자. 끙끙이는 인생의 다른 문제 앞에서도 쉽게 포기하는 모습을 보일 것이다. 우리는 단지 지식을 획득하거나 확장하기 위해 공부를 하지는 않는다. 학문의 즐거움을 통해 인간적인 성숙을 얻게 되기 때문이다. 끙끙이가 수학을 포기해서 얻는 자유로움보다 수학을 극복해서 얻는 희열과 자신감이, 앞으로의 끙끙이 인생에 더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둘다 해야' 하는 경우 - 수학은 수학대로 해야 하고, 좋아하는 그림도 계속해서 해야 한다. 우리는  '필요'를 위해서만 공부를 하지는 않는다. 학교에서 배운 다양한 교과의 지식들은 알게모르게 다 쓸모가 있다고 봐야 한다. 단적으로 끙끙이의 경우, 수학을 잘하게 되면, 미술에서도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비례나 균형, 각도 등 그림 그릴 때 필요한 기술 등은 수학적인 안목과 감각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또한 끙끙이는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는 과정에서도 난관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그때마다 어렵다고 포기해버릴 것인가?...

5. 긍정적이다 - 한국에 비해 훨씬 자유로운 분위기, 다양한 취미활동이 가능함, 정답이 없는 시험, 진로 선택의 다양성과 어떤 선택을 하든 존중해주는 분위기, 유급 제도를 통한 학습 지진아 방지, 학교 밖 체험활동, 선생님과 제자 간의 격의 없는 분위기, 사교육의 도움 없이도 얼마든지 학교 공부를 따라갈 수 있음, 공부만 잘하는 인재보다는 다양한 경험을 쌓은 학생들을 우대..

부정적이다 - 넘치는 자유를 준 결과 일부 학생들이 보이는 방종, 진로 선택이 빠른 것은 장점인 동시에 단점이 되기도 함(시행착오를 겪는 경우가 있음), 방학이 길기는 하지만 학습량이 많고, 요구하는 사고력의 깊이도 만만치 않아서 결코 쉽지 않음, 고등교육을 받지 않으려는 학생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느슨한 사회 분위기, 특히 무너진 교육 시스템의 문제임..

2002 한국어 bac 기출문제

과학이 발달하고 컴퓨터가 인간의 지식을 대신해 준다고 해도 영원히 밝혀내기 힘든 일은 사람의 미래에 대한 예측이다. 우리나라 사람은 예로부터 인간의 일들을 모두 자연에 속하는 것으로 여겨 왔다. 그래서 자연의 현상이나 변화를 통해 사람의 일도 알아내려 했다.
 
세계는 크게 동양과 서양으로 나뉜다.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중국, 일본을 중심으로 하는 동양의 문화와 유럽을 중심으로 하는 서양의 문화는 서로 비슷한 점도 있지만 다른 점이 많다. 우선 자연에 대한 생각에 있어서 커다란 차이점이 있다. 서양에서는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며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파악하고 모든 자연물을 마음대로 이용해야 한다고 여겼다.
 
반면 동양에서는 인간도 자연의 일부로서 자연은 조화를 최우선으로 삼기 때문에 자연과 더불어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동양의 자연관은 우리나라의 인생관에서 더욱 확실히 찾아볼 수 있다. 우리 조상들은 사계절의 변화에서 인생의 네 단계, 즉 태어나고, 자라고, 결혼을 하여 자식을 기르고, 죽어서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또 집을 지을 때에도 산남수북이라 하여 산을 등지고 강이 앞쪽에 있는 곳을 좋은 곳으로 쳤다.
 
이는 단순히 지리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나라의 자연환경을 생각해서 내려진 올바른 결론이었다. 즉 겨울에 차가운 북풍은 뒤의 산이 막아주고, 여름에 남쪽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은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곳에 집을 지어 추위를 막고 더위를 피하고자 한 것이다.
 
이 밖에도 모든 자연 현상을 관찰하고 거기에서 적절한 원리를 발견하여 사람의 일에도 적용시키려 했다. 오늘날 우리가 미신이라 여기는 것들도 실은 옛날의 문화 전통으로 보면 타당하고 합리적인 면이 있다. 시대가 바뀌고 문화가 달라지면서 우리의 생각도 달라지지만 아직도 근본적인 것은 자연은 가장 위대한 스승이요, 그 자연에서 인간도 배우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 산남수북 : 산을 북쪽에 두고 물을 남쪽으로 하여 집을 짓는다는 뜻.
주의 : II번을 제외하고는 모든 답을 한글로 쓰시오.
 
I. 위의 글에 어떤 제목을 붙일 수 있습니까?
 
 
II. 위의 글 중에서 밑줄 친 부분을 프랑스말로 번역하시오.
 
 
III. 서양과 동양의 자연관에 대한 차이점은?
 
 
IV. 1) 인생과 자연을 어떻게 비교하였나?
 
2) 왜 집을 지을 때 산남수북을 지켜야 하는가?

2003 한국어 bac 기출문제

     독서와 인생
 
                                                                                                                       이희승
 
 
     사람은 무엇을 위하여 사는가? 이상을 위하여 산다이상을 위하여 산다는 것은, 어떠한 꿈을 그리며 산다는 말이 된다. 이 꿈이란 것은 현실이 아니란 말이다. 현실 이상의 것, 초현실적인 것을 의미한다.
 
사람은 이상을 추구하면서 산다. 그리하여 그것을 실현하려고 한다. 그런데 이상의 실현이라는 것은 그다지 용이한 일이 아니다. 그리하려면 적어도 두 가지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 한 가지는 노력이니, 노력은 다시 두 가지 면에서 생각할 수 있다. 그 일면은 이상을 추구하는 데 필요한 물질의 축적이요, 다른 일면은 이러한 물질을 활용하는 데 필요한 육체적 부지런이다. , 근면이다. 왜냐하면, 아무리 훌륭하고 물질이 풍부하게 있다 할지라도, 육체적 근면이 없이는 그 가치를 발휘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둘째 대가는 지혜다. 지혜도 두 가지 면에서 생각할 수 있으니, 그 하나는 예지요, 다른 하나는 지식이다. 예지는 사람이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것이지만, 지식은 후천적으로 배워 얻는 것이다.
 
그런데 예지가 아무리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것이라 하지마는, 후천적인 지식을 연마하고 수득함으로써 이것을 계발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인생에서 가장 필요하고 긴급 하고 절실한 활동은 지식을 획득하는 그것이라고 하겠다.
 
그러면 지식을 획득하는 방법을 생각하여 보기로 하자. 가장 초보적이요 원시적인 방법은, 체험으로써 지식을 얻는 일이다. 불을 만져 보고 뜨거움을 느끼게 되면, 불은 뜨거운 성질, 즉 열을 가지고 있는 물질이라는 것을 알게 되니, 이 체험으로 한 가지 지식을 배운 것이다. , 얼음을 만져 보고 차가움을 느끼게 되면, 얼음은 차가운 성질을 가졌다는 지식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인간은 이와 같이 실제의 체험으로써 일생 동안 많은 지식을 배우게 된다.
 
그러나 지식은 그 종류와 양이 무한하다. 오늘날까지 인류가 알아 낸 지식은, 한 개인이 한평생 체험을 거듭할지라도 그 몇만 분의 일도 배우기 어려운 것이다. , 지식 중에는 체험으로써 배우기에는 너무 위험한 것도 많다. 가령, 콜레라균은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무서운 독성을 가진 미생물인데, 이것을 어떠한 개인이 먹어 보아서 그 성능을 증명하려 하면, 그 사람은 그 지식을 얻기 전에 벌써 죽어 버리고 말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체험 만으로써 모든 지식을 얻으려는 것은 매우 졸렬한 방법일 뿐 아니라,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 하겠다.
 
     지식을 획득하는 둘째 방법은 배우는 일이다. , 교육을 통하여 지식을 습득하는 방법이다. 사람이 어려서는 가정 교육을 통하여, 좀 자라서는 학교 교육을 통하여, 그리고 성인이 되어서는 사회 교육에 의하여 지식을 배우게 되나, 도저히 그 전부를 배울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런데 이 중에서 학교 교육과 같은 것은 인격함양과 더불어 지식 획득을 주목적으로 하는 전문적인 행사이기 때문에 비교적 짧은 기간 안에 많은 지식을 배울 수 있다.
 
지식을 획득하는 제3의 방법은 연구와 터득이다. 배움은 어디까지나 수동적이지만, 터득은 자력으로 미지의 새로운 지식을 향하여 개척하여 나가는 것이다. 이것은 능동적이요 적극적인 지식 획득의 방법이니, 수확에 비하여 그 노력은 막대한 바가 있다. 기지의 지식과 끈기 있는 실험으로써, 또는 추리로써 대상에 대한 진상을 밝혀내면, 거기서 비로소 새 지식을 획득하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새 지식을 향하여 연구하고 터득해 나가는 데는, 선배나 기타 전문가의 힘을 빌리게 되는 일도 있는데, 거기에는 여러 가지 불편과 곤란이 개재된다. 그러므로 어느 방향의 전문가가 되든지, 대성하는 사람들은 대개 독자적으로 연구하여 나가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독력으로 개척하여 나가는 데에는 무엇보다도 필요하고 비교적 쉽사리 입수할 수 있는 재료가 서적이다.
 
 질문 :
A. 밑줄 친 부분을 불어로 번역하시오. (7번째 줄에서 13번째 줄까지)
 
 
 
 
 
 
B. 1 사람은 무엇을 위해 사는가 ?”라는 질문을 첫머리에 내세운 까닭은 ?
 
 
    2 예지와 지식의 차이가 무엇인지 설명하시오 ?
 
 
 
 
 
C. 1 사람이 살아가는 데 책은 왜 필요한가 ?
 
 
 
 
     2 지식을 획득하는 방법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 ?
 
 
 
 
 
 
 
 

2005 한국어 bac 기출문제와 예시답안

1.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민족은 나름대로 자기들만의 신앙을 가지고 있2. 기 마련이다. 오천 년 역사를 지닌 한국도 예외는 아니어서 민족과 문화 3. 의 형성 과정에서 독특한 민간신앙이 생겨났다. 한반도라고 하는 자연 환4. 경과 농업 중심의 생활 방법이 한국인만의 독특한 신앙을 가지게 한 것이5. . 이 민간 신앙은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한국 문화의 골격을 이루었6. 고 한국인의 의식 속에 깊이 자리잡게 되었다.
7. 민간신앙은 다신론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 신들은 산, 바다 등 자연은 8. 물론이고 동식물의 영혼이나 집안 구석에까지도 존재하며, 전지전능한 신9. 이라기보다 오히려 인간적인 제약이나 개성을 가진 신들이다.
10. 원래 민간신앙이 그렇듯이 한국의 민간신앙도 개인이 아닌 공동체의 신11. 앙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사람이 병이 나서 굿을 하는 경우에, 가장을 12. 중심으로 한 집안 전체의 안위를 빌면서 동시에 환자의 치유를 빈다.
13. 민간신앙은 불교나 기독교와 같은 오래 종교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14. 른 종교로부터 많은 경멸을 받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그로부터 사상적15. 인 체계를 세우고 조직화하는 법을 배운 것이다. 특히 불교와의 교류는 16. 민간신앙의 발전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17. 절에 가면 산신령을 모시는데 이것은 우리나라 불교에 민간신앙적인 요18.소가 포함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반면 무당 집에 부처를 모시는 것은 민19.간신앙에 불교적 요소가 포함되어 있음을 역력히 보여주는 증거이다.
20. 민간신앙은 생사화복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기복신앙이다. 민간21. 신앙에서의 신은 인간의 근본 문제인 존재나 사망에 대한 해결책을 제22. 시한다기보다는 기능 신으로서 인간과 대등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본23. . 그래서 신병이나 우환이 있을 때, 혹은 재물, 출세 등 개인의 구체적24. 인 목적을 위해서 사람들이 신을 찾게 된다.
25. 현대화를 추구하는 국가적 차원에서 보면 민간신앙은 국가 발전의 장애26. 가 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사회는 경제와 문화가 보조를 맞추어 균27. 형 있게 나아갈 때 성장, 발전하는 것이고 보면, 사회적 협동체제를 유28. 지하는 민간신앙의 역할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민족의 신, 29. 을의 신, 가정의 신을 모시는 집단의식이 사회의 협동체제를 유지하는데 30. 크게 기여하기 때문이다.
 
 
EPREUVE FACULTATIVE
BACCALAUREAT GENERAL ET TECHNOLOGIQUE
DUREE 2 HEURES
 
* 다음 물음에 대답하시오. 
A. 밑줄 친 부분을(20째 줄에서 30째 줄까지) 프랑스말로 번역하시오.
 
B. 아래 물음에 한국말로 대답하시오.
1. 위의 글에 어떤 제목을 붙일 수 있겠나.
2. 왜 민간신앙이 사회 협동체제를 유지하는데 크게 기여하고 있는가?
3. 불교는 어떤 식으로 민간신앙의 발전에 도움을 주었나?
4. 민간신앙의 특징은?
 

C. 아래 물음에 한국말로 대답하시오.
1. 민간신앙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쓰시오.


2. 프랑스에도 민간신앙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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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예시답안입니다.(불어 번역 문제는 제외) 참고하세요.
   
B. 1.
제목을 '사회 내 민간신앙의 역할'로 지은 것은 이 글에서 민간신앙의 역사와 특징, 민간신앙과 타 종교와의 관계, 사람들이 민간신앙을 믿는 목적 등 민간신앙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기도 하지만 민간신앙의 현재적 의미, 즉 문화적 측면에서 민간신앙이 기여해온 사회 통합 기능에 대하여 주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미신이라고 업신여겨져 온 민간신앙의 긍정적인 가능성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점에 착안, '사회 내 민간신앙의 역할'이라고 제목을 지었다.  

2. 민간신앙은 공동체 사회 안에서 발전한 믿음이다. 즉 개인을 위해서만 존재하지는 않았다. 가령 가족, 마을 등의 공동체에서 공동으로 모시는 신이 있었고, 특히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민간신앙은 그 집단의 사람들을 하나로 묶고,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협동하게 만드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 따라서 민간신앙은 자연스럽게 사회 통합의 기능을 맡게 된 것이다.

3. 불교는 여러모로 체계가 부족했던 민간신앙에 형식적인 기초를 제공했다. 달리 말하면 민간신앙은 세계의 3대 종교 가운데 하나인 불교를 배우고, 모방함으로써 내실을 기했다고 볼 수 있다. 비록 거대 종교의 면모를 갖추는 데까지는 역부족이었지만 적어도 불교를 통해 민간신앙은 기존 사상을 재정립하고, 발전시키게 된 것이다

4. 민간신앙에서의 신들은 하나의 모습이 아니다. 또한 거대 종교의 신들이 그렇듯 절대적인 권력을 가지고 있지도 않다. 오히려 인간처럼 허점도 있고, 보통 우리가 상상하는 전지전능한 신처럼 늘 도덕적이거나 엄숙하지도 않다. 인간에 가까운 면모를 보이므로 한결 친근하게 다가오는 것이다. 또한 민간신앙은 기본적으로 '복을 비는' 기복신앙이다. 이는 민간신앙의 한계이면서 동시에 특징이라고 볼 수 있는데 사람들은 이런 신들에 의지함으로써 현세에서의 복을 빌고, 동시에 삶의 고통을 잊고자 노력했다.

c. 1. 보통 사람들은 민간신앙을 '미신'으로 치부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과학과 의료기술이 발달하기 이전, 사람들이 의지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바로 '신'이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수많은 형태의 신들이 민간신앙 안에서 탄생했던 것으로 짐작된다. 민간신앙이 옛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고, 아픔을 잊게 해주는 치료제가 되었다면 그것은 상당히 의미있다고 본다. 또한 민간신앙 속에서 보여지는 다양한 제사 의식, 이를테면 축원의 노래나 춤 등은 오늘날 우리에게 많은 영감을 준다. 요컨대 민간신앙을 문화의 한 부분으로서 받아들일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민간신앙 현세의 복을 비는 '기복신앙'이라고 해서 경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힘겨운 인간 삶에서 그런 욕망을 갖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노력 없이 복만 빌면 곤란하겠지만 한낱 약한 인간으로서 신에게 기대려는 욕구를 무조건 나쁘게 보아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2. 민간신앙이 있어도 미미하거나거의 사라졌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프랑스는 오래 전부터 가톨릭을 국교로 정했고, 가톨릭은 유일신 종교이기 때문에 민간신앙처럼 다신을 모시는 전통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짐작이다. 이런 가톨릭 전통 하에서 타 종교에 대한 탄압은 물론, 프랑스 내에 존재하는 다양한 민간신앙들도 핍박의 대상이 되었을 것이 분명하다. 더욱이 이성 중심의 철학이 유독 강세 프랑스에서 '미신'처럼 여겨지는 민간신앙이 대중화되기에는 역부족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때문에 프랑스에서 민간신앙은 소수의 문화적 취향으로 남아있을 뿐, 더 이상의 세력 확장은 어려웠을 것이라고 본다.

tip:

마지막 질문인 '프랑스에 민간신앙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해서는 민간신앙의 의미와 범주를 어떻게 설정하는가에 따라 답이 Yes가 될 수도, NO가 될 수도 있다고 봅니다.

어느 나라에나 민간신앙이 존재한다고 본문 서두에 나와 있지만 서민들의 기복신앙으로서 '진지하게 받들어지는' 민간신앙은 현재 자취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프랑스에서 민간신앙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민간신앙의 관습들은 오늘날에도 우리들에게 조금씩 남아 있지요. 현대인들이 그것을 비판 없이, 습관적으로 받아들이더라도 말입니다. 그렇게 보면 또 '프랑스에 민간신앙이 존재한다'라고 답안을 작성할 수 있겠지요.  

이 문제에서 Yes냐 No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숙고와 사유에 따라 답이 갈릴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열린 답안이 가능하지만 여러분 나름의 근거를 제시하시고, 적절한 예를 들어 이해를 돕는 편이 좋겠습니다. 

 
 

2006 한국어 bac 기출문제


1. 식물과도 감정의 교류가 이루어진다는 이야기가 있다. 2. 유리병 2개에 물을 담아 껍질 벗긴 양파를 올려놓고 뿌리 내리는 모습을 3. 관찰했다. 부엌 창가 선반에 얹어 두고 똑같이 물을 갈아주면서 한쪽에는 4. “너는 참 예쁘구나. 무럭무럭 잘 자라라.”하고, 다른 하나에는 너는 미워. 5. 너는 자라지 말아라.”라고 하였다. 며칠이 지나자 양쪽 모두 하얗고 가느다란 6. 뿌리가 몇 개씩 삐죽이 나왔다.
 
7. 매일 2개의 양파에게 각각 다른 말을 하면서 물을 갈아주며, 의도적으로 8. 하나는 예뻐하고 다른 하나는 미워했다. 3주일 정도 지나 양쪽 모두 뿌리가 9. 10cm쯤 자랐을 때부터 말의 위력을 실감케 하는 현상이 일어났다. “예쁘게 10. 잘 자라라.”고 축원해 준 양파는 하얀 뿌리가 길게 자라는데, “미우니 11. 자라지 마라.”라고 한 양파는 더 이상 뿌리가 자라지 않았다.
 
12. 미움을 받고 더 이상 못 자라는 양파를 보니 마음이 언짢았으나 계속 13. 한쪽에는 미소지으며 축복해 주고 다른 한쪽은 화난 얼굴로 밉다고 했다. 14. 축복과 사랑을 받으며 자란 양파는 뿌리가 유리병 안에 가득 차도록 잘 15. 자라고 연두색 싹이 트더니 잎사귀가 난초처럼 길게 자란다. 미움을 받은 16. 양파는 똑같이 물을 갈아주어도 더 이상 자라지 못하고 뿌리가 썩기 17. 시작하더니 차츰 갈색으로 변하여 오그라든다. 사랑의 힘에 놀라고 말의 18. 무서운 힘에 두려움이 생긴다.
 
19. 썩은 양파를 내버린 후에도 한쪽 병의 양파는 오랫동안 싱싱하게 부엌 20. 창가의 선반을 독차지 했다. 21. 생명 있는 모든 것은 사랑 받을 때 윤기가 돌고 생기가 난다. 22. 식물도 감정이 있는 듯 말의 영향을 받는데, 아이들은 어른의 말과 표정에 23. 따라 얼마나 많은 영향을 받을까. 24. 아이들은 잘 먹이는 것만으로 잘 자라지 않는다. 음식과 사랑을 함께 25. 먹으며 자라야 몸과 마음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다.
 
26. 아이를 기르며 짜증나거나 화날 때, 내가 실험한 양파를 생각하며 말씨를 27. 가다듬고 마음을 다스리곤 했다. 말씨가 거칠면 얼굴 표정도 일그러지고 28. 감정이 격해지기 쉽다. 나의 거칠고 험한 말씨가 되어 아이의 마음속에 29. 독초처럼 퍼져 나갈까 두려워 함부로 말이 튀어나가지 못하도록 심호흡을 30. 하며 지그시 눌러 참는다.
 
31. 어린 딸은 양파가 엄마의 말대로 변화되는 것이 인상적이었는지 말을 32. 삼가고, 말씨가 고운 사람으로 성장했다.
 
Epreuve facultative
Toutes séries générales et technologiques
Durée : 2 heures
 
QUESTIONS
 
Compréhension :
1.이 글에 제목을 붙인다면?
 
2. 양파는 작자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나?
 
3. 이 글의 교훈은?
 
4. 작가의 딸은 양파로부터 무엇을 배웠나?
 
Expression personnelle :
     5. 왜 작가는 이런 경험을 했나?
 
 


Traduction :
 
21째 줄에서30째 줄까지 불어로 번역하시오
생명 있는 모든 것은………………심호흡을 하며 지그시 눌러 참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