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
박민규 (2005)
지금 열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승객 여러분들은 안전선 밖으로 물러나주셔야겠지만, 그게 될 리가 없는 것이다. 승객들은 모두 전철을 타야 하고, 전철엔 이미 탈 자리가 없다. 타지 않으면, 늦는다. 신체의 안전선은 이곳이지만, 삶의 안전선은 전철 속이다. 당신이라면, 어떤 곳을 택하겠는가.
처음 열차가 들어오던 그 순간을 나는 잊을 수 없다. 그러니까 열차라기보다는, 공포스러울 정도의 거대한 동물이 파아, 하아, 플랫폼에 기어와 마치 구토물을 쏟아내듯 옆구리를 찢고 사람들을 토해냈다. 아아, 절로 신음이 새어나왔다. 뭔가 댐 같은 것이 무너지는 광경이었고, 눈과 귀와 코를 통해 머릿속 가득 구토물이 차오르는 느낌이었다. 야! 코치 형이 고함을 질러주지 않았으면, 나는 아마도 놈의 먹이가 되었을 테지. 정신이 들고 보니, 놈의 옆구리가 흥건히 고여있던 구토물을 다시금 빨아들이고 있었다. 발전(發電)이라도 일어날 기세였다. 힘! 그때 코치 형이 고함을 질렀다. 해서, 엉겁결에 - 영차, 영차 무언가 물컹하거나 무언가 딱딱한 것들을 마구마구 밀어넣긴 했지만 그것이 무엇이었는지는 지금도 기억나지 않는다. 아니, 어찌 내 입으로 그것이 인류(人類)였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정신 차려. 열차가 출발하자 코치 형이 다가와 단단히 주의를 주었다. 네. 심호흡을 크게 했지만 다리가 떨리긴 마찬가지였다. (가) 저 사람들을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마. 화물이나 뭐 그런 걸로 생각하란 말이야. 알겠니? 알겠지?, 에서 다시 열차가 들어왔으므로, 나는 새로이 전열을 가다듬었다. 파아, 하아. 의정부행이었던 두 번째 열차는, 아마도 두 배의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는 느낌이었다. 이건 마치, 전 인류가 아닌가.
그렇게 한 시간이 지나갔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안전선 밖의, 그러니까 <물러서주시기 바랍니다> 정도의 지점에 주저앉아 있었다. 그리고 눈앞에는 - 세 개의 넥타이핀과 두 개의 단추, 더불어 부러진 안경다리가 부상병의 목발처럼 뒹굴고 있었다. 뿔테였다. 인류의 분실물들을 수거하며, 나는 비로소 온몸이 땀으로 젖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 중략 -
일주일이 그런 식으로 지나갔다. 아침이면 전 인류의 참상을 목격하고, 오전의 짧은 잠, 이어지는 주유소 알바와 밤의 편의점. 온종일 머리 어깨 무릎 발이 아프더니, 다음 날엔 머리 어깨 발 무릎 발 머리 어깨 무릎 귀 코 귀까지가 아프다고 할 정도로, 온몸이 아파왔다. 이건... 시간당 삼만 원은 받아야 하는 게 아닌가. 나는 다시 불만에 사로잡혔지만, 지금 관두면 억울하지 않니? 코치 형의 코치도 과연 옳은 말이다 싶어 이를 악물고 출근을 계속했다. 어쩌면 피라미드의 건설 비결도 <억울함>이었는지 모른다. 지금 관두면 너무 억울해. 아마도 (나) 노예들의 산수란, 보다 그런 것이었겠지.
* 발전(發電) : 전기를 일으킴.
* 인류(人類) : 세계의 모든 사람.
* 산수 = 수학.
<문제>
1. 주인공은 전철 역에서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가?
2. 승객들의 모습을 사물에 비유하고 있는 단어나 문구를 본문에서 찾아 쓰시오.
3. (가)처럼 말한 이유는 무엇인가?
4. (나)에서 '노예의 산수'란 어떤 의미인지 자유롭게 해석해 보시오.
5. 본문에서처럼 억울함도 우리가 어떤 일을 지속해야 하는 하나의 이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여러분 각자를 움직이는 동력(힘)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 이유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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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예시답안입니다. 참고하세요.
1. 승객이 몰리는 아침 저녁의 출퇴근 시간, 더 많은 승객을 지하철에 탑승시키기 위해 뒤에서 밀어주는 도우미 역할을 한다.
2. 구토물, 댐, 무언가 물컹하거나 무언가 딱딱한 것들, 화물.
3. 주인공이 하는 일은 사람들을 지하철 안으로 밀어넣는 역할이다. 승객과의 신체적 접촉이 불가피한데, 간혹 이를 불쾌하게 여길 승객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것에 신경 쓰다 보면, 이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이 코치 형의 생각이다. 때문에 주저하지 말 것이며, 심지어 승객을 사물처럼 취급하라고 충고했던 것이다. 그 편이 일을 수행하기에는 훨씬 쉽기 때문이다.
4. 여기서 말하는 '노예'는 자신의 욕망이나 의지에 따라 능동적으로 사는 사람이 아니라 상황에 이끌려 수동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을 뜻한다. 그리고 '노예의 산수'라 함은 이런 사람들이 생각하는 방식, 정확히 말하면 명백한 '지혜의 부족'을 의미한다. 자신의 삶에서 당당한 주인으로 살아가지 못하는 사람들은 삶의 만족도가 낮고, 일에서 보람을 느끼기도 어렵다. 그리고 언제나 상황의 노예가 되어 자신이 내린 판단을 합리화하곤 한다.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동안의 수고가 아까워 일을 그만두지 못하는 주인공처럼 '노예'들은 먼 미래까지 고려한, 최선의 선택을 하지는 못한다. 이들의 인식은 기껏해야 현실이라는 좁고 답답한 울타리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5. 나를 움직이는 동력은 '즐거움'이다. 겉으로 보기에 그럴 듯하거나 명예가 주어지거나 혹은 보상이 주어지는 일들은 이상하게 별로 즐겁지 않다.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내가 즐거우면 주저하지 않고, 시도해보는 것이 나의 성향이다. 좋아하는 일일수록 시작도 빠르고, 실력도 급성장한다. 예를 들어 나는 음악이 좋아서 독학으로 베이스 기타를 배웠고, 오디션을 통해 밴드 생활도 1년 넘게 경험했다. 지금은 공부를 위해 밴드를 떠났지만 후회는 없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1년 동안 실컷 해보았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의 마음이 즐거울 때 최고의 결과가 나온다고 생각한다. 좋은 결과는 그것을 꼭 해내야 겠다는 비장한 각오에서 나온다기보다는 마음이 즐거운 가운데 우연히 오는 것이다.
2012년 2월 28일 화요일
2012년 2월 26일 일요일
한국어 bac 응용문제 소설 편 5와 예시답안
침이 고인다
김애란 (2007)
몇 번의 알람이 울렸다 꺼지고, 고단하고 일상적인 나날들이 지나갔다. 후배는 여전히 목소리가 좋았지만, 예전만큼 이야기를 많이 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들에게 '습관'이란 게 생겨버린 탓일 수도 있었다. 일상의 습관, 관계의 습관, 그 습관을 예상하는 습관까지 말이다. 그것은 그녀가 퇴근 후 현관문 앞에 서서 '지금 저 안에 후배가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하던, 그 즈음부터였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점점 후배에 대해 '안다'고 생각하게 됐다. 후배의 습관, 주로 부정적인 목록을 발견했을 뿐인데도 말이다. 그녀는 어느새 주인공의 죽음을 기다리는 독자처럼, 후배가 저지르는 작은 실수들을 숨죽여 기다리게 되었다. 물론 그녀는 자신이 그렇다는 걸 자각하지 못했다. 그녀는 어느 순간 '거봐, 그럴 줄 알았다니까' 하고 후배의 잘못에 환호했다. 그녀는 혼자 중얼거렸다. 후배는 변기 뚜껑을 잘 적신다. 후배는 화장품을 헤프게 쓴다. 후배는 드라이할 옷을 세탁기에 집어넣는다. 후배는 이불 위에서 첨삭을 하고, 잉크를 묻혀놓는다. 후배는 문을 세게 닫는다. 후배는 연예 기사를 너무 많이 본다. 후배는 통화할 때 말이 많고, 후배는 한 번 쓴 수건은 다시 쓰지 않는다. 후배는 옷을 유치하게 입는다. 후배는 옷을 유치하게 입는데, 가끔 내 감각을 나무란다. 후배는 샤워 후, 발에 물기를 완전히 닦지 않고 이불 위로 올라온다. 그녀는 곧 후배의 그런 행동들이 싫어졌다. 처음에는 몇 번 농담으로 부드럽게 타일렀다. 그때마다 후배는 몰랐다는 듯, 실수를 인정하며 수줍어했다. 그러나 그 다음 번에도 똑같은 행동을 반복했다. 그녀는 그 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몇 번이나 지적해 주는데도, 어떻게 그것을 번번이 잊어버릴 수 있는지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다. 물론 후배에게도 선배의 못마땅한 점들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에겐 별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 후배는 물을 너무 조금 마시는 것 같다. 후배는 젓가락을 이상하게 쥐는 것 같다. 후배는 발가락에 투박한 옹이가 있는데 그 모습을 자꾸 보니 싫어진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후배의 얼굴은 너무 번들거린다. 후배는 야채를 잘 안 먹는다. 후배는 자꾸만 진밥이 더 맛있다고 그런다. 그러니까 아무래도 후배는 이상한 것 같다. 물도 조금 마시고, 야채도 잘 안 먹고, 발가락에 옹이가 있기 때문일까? 그녀는 조심스럽게 충고하다 어느 순간 자기도 모르게 짜증을 냈다. 후배는 미안해했고, 다음번엔 똑같은 행동을 반복했다. 후배는 목소리가 좋았지만, 그렇다고 그 많은 습관들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그러나 그녀가 무엇보다도 견딜 수 없었던 건, 후배가 자신을 따라하고 있다고 느꼈을 때였다. 먼저, 옷 입는 방법에서부터 표가 났다. 후배는 그녀의 옷차림을 농담 삼곤 했지만, 그러면서도 그녀가 입는 옷과 비슷한 것들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녀도 그려러니 했다. 가끔은 '그럴 돈으로 먼저 저축을 하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치졸한 생각도 들었다. 젊고 환한 후배가 옷에 관심이 많은 건 자연스러운 일인데도 말이다. 후배는 그녀의 말투도 따라했다. 원래 말이란 주인이 없고, 오염되고, 공유되기 마련인 것이지만 후배의 입에서 자신이 즐겨 쓰는 어휘나 농담이 튀어나올 때마다 뭔가 도둑맞은 기분을 느꼈다. 그녀는 후배가 종일 자신의 노트북 앞에 앉아 있는 것도 신경 쓰였다. 자신이 많은 시간에 걸쳐 정성스럽게 '즐겨찾기'해 놓은 목록들을 너무 쉽게 돌아다니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특히 따로 분류해 놓은 음악, 영화, 독서, 철학 사이트들을 돌아다니며 아는 체를 하는 것이 불편했다. 후배는 음악을 잘 모르는데, 후배의 미니홈피에 자신이 좋아하는 밴드의 노래가 배경음악으로 깔려 있는 걸 보고 무시하는 마음이 들었던 때도 있었다. 그녀는 온라인 세계에서조차 혼자 있을 공간이 없다고 느꼈다.
* 첨삭 : 글의 내용 일부를 보태거나 삭제하여 고침.
* 옹이 : '굳은 살'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문제>
1. 후배와의 공동생활이 어려워진 것은 어떤 이유에서인가?
2. 밑줄 친 부분과 같은 종류의 '도둑맞은 기분'은 왜 생기는 것인지, 여러분의 생각을 발전시켜 보시오.
3. 어떤 사람을 모방하고자 하는 심리는 왜 생기는 것인가?
4. 만약 여러분이 그녀라면 앞으로 어떻게 하겠는가?
5. 우리는 타인을 이해할 수 있는가?
* 5번 문제는 바칼로레아 철학 기출문제입니다.^^ 이 지문과 함께 생각해볼 수 있는 문제라 생각하여 넣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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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예시답안입니다. 참고하세요.
1. 후배와 함께 살면서 자연스럽게 그녀의 단점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후배가 자신의 고유한 개성이라고 믿는 언어 습관이나 취향, 지키고 싶은 사생활의 영역까지 침범하게 되면서 그녀에 대한 호의는 급속도로 냉각되었다.
2. 한 개인의 역사는 그냥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장시간의 생각과 시행착오를 거듭한 결과, 자연스럽게 드러나게 된 모습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그것이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우리는 그것을 '나다운' 것으로 간주하게 된다. 그런데 타인이 그것을 아무렇지 않게 모방한다면 도둑맞은 기분이 들 수 있다. 더욱이 그것이 획기적인 생각이거나 시나 소설처럼 창의적인 작품이거나 혹은 흉내낼 수 없는 스타일이라고 한다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그것은 다른 사람이 10년에 걸쳐 이뤄낸 노고를 10분만에 훔치는 일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되고 싶어한다. 누군가를 닮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가도 궁극적으로는 다른 사람과 구별되는 무언가를 갖고자 하는 것이 우리의 근원적인 욕망인 것 같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주인공이 후배에게 느끼는 감정은 분리할 수 없는 것을 억지로 나눠써야 하는 기분 아니었을까? 주인공은 자신에게 소유권이 있으므로 사용권도 역시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3. 좋아하거나 존경하는 사람이 있으면 자연스럽게 상대방의 말투나 생각을 따라하게 된다. 그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우리는 그렇게 함으로써 상대와 가까워졌다는 느낌을 받는다. 특히 자아가 다듬어지지 않은 시기에는 여러 사람을 역할 모델로 삼아 모방하게 된다. 타인을 통해서 차차 나의 진면목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누가 나를 닮고 싶어한다면 그것 만한 영광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곧 내가 모방해도 될 만큼, 가치있는 사람이라는 점을 드러내는 일이다. 더욱이 그 사람이 나를 따라한다고 해서 나의 고유한 측면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두려워하거나 기분나빠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생각한다.
4. 나는 가능하면 다른 사람과 공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고, 스스로도 좋아하는 편이다. 따라서 후배가 내 컴퓨터의 음악을 듣거나 다운받아 놓은 영화를 보는 것은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단 그것을 사용하기 전에 한 마디 말이라도 해주기를 바란다. 그렇다면 나도 기분좋게 내가 가진 것을 나누어줄 수 있다. 주인공이 후배를 싫어하게 된 것은 후배의 방식이 '일방통행' 식이고, 실수를 습관적으로 반복하기 때문에 못 미더워진 탓이다. 나라면 내가 허용할 수 있는 것과 허용하지 못하는 부분에 대하여 처음부터 솔직하고, 단호하게 이야기하겠다. 그리하여 후배가 나를 이해하고 존중할 수 있도록 하겠다.
또한 내가 주인공이라면 후배가 자신의 취향을 찾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고, 격려할 것이다. 처음부터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알고, 자신의 취향을 파악하는 사람은 드물기 때문이다. 좀 더 넉넉한 시선으로 후배를 보고, 후배의 변화를 기다려 보겠다.
김애란 (2007)
몇 번의 알람이 울렸다 꺼지고, 고단하고 일상적인 나날들이 지나갔다. 후배는 여전히 목소리가 좋았지만, 예전만큼 이야기를 많이 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들에게 '습관'이란 게 생겨버린 탓일 수도 있었다. 일상의 습관, 관계의 습관, 그 습관을 예상하는 습관까지 말이다. 그것은 그녀가 퇴근 후 현관문 앞에 서서 '지금 저 안에 후배가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하던, 그 즈음부터였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점점 후배에 대해 '안다'고 생각하게 됐다. 후배의 습관, 주로 부정적인 목록을 발견했을 뿐인데도 말이다. 그녀는 어느새 주인공의 죽음을 기다리는 독자처럼, 후배가 저지르는 작은 실수들을 숨죽여 기다리게 되었다. 물론 그녀는 자신이 그렇다는 걸 자각하지 못했다. 그녀는 어느 순간 '거봐, 그럴 줄 알았다니까' 하고 후배의 잘못에 환호했다. 그녀는 혼자 중얼거렸다. 후배는 변기 뚜껑을 잘 적신다. 후배는 화장품을 헤프게 쓴다. 후배는 드라이할 옷을 세탁기에 집어넣는다. 후배는 이불 위에서 첨삭을 하고, 잉크를 묻혀놓는다. 후배는 문을 세게 닫는다. 후배는 연예 기사를 너무 많이 본다. 후배는 통화할 때 말이 많고, 후배는 한 번 쓴 수건은 다시 쓰지 않는다. 후배는 옷을 유치하게 입는다. 후배는 옷을 유치하게 입는데, 가끔 내 감각을 나무란다. 후배는 샤워 후, 발에 물기를 완전히 닦지 않고 이불 위로 올라온다. 그녀는 곧 후배의 그런 행동들이 싫어졌다. 처음에는 몇 번 농담으로 부드럽게 타일렀다. 그때마다 후배는 몰랐다는 듯, 실수를 인정하며 수줍어했다. 그러나 그 다음 번에도 똑같은 행동을 반복했다. 그녀는 그 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몇 번이나 지적해 주는데도, 어떻게 그것을 번번이 잊어버릴 수 있는지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다. 물론 후배에게도 선배의 못마땅한 점들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에겐 별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 후배는 물을 너무 조금 마시는 것 같다. 후배는 젓가락을 이상하게 쥐는 것 같다. 후배는 발가락에 투박한 옹이가 있는데 그 모습을 자꾸 보니 싫어진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후배의 얼굴은 너무 번들거린다. 후배는 야채를 잘 안 먹는다. 후배는 자꾸만 진밥이 더 맛있다고 그런다. 그러니까 아무래도 후배는 이상한 것 같다. 물도 조금 마시고, 야채도 잘 안 먹고, 발가락에 옹이가 있기 때문일까? 그녀는 조심스럽게 충고하다 어느 순간 자기도 모르게 짜증을 냈다. 후배는 미안해했고, 다음번엔 똑같은 행동을 반복했다. 후배는 목소리가 좋았지만, 그렇다고 그 많은 습관들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그러나 그녀가 무엇보다도 견딜 수 없었던 건, 후배가 자신을 따라하고 있다고 느꼈을 때였다. 먼저, 옷 입는 방법에서부터 표가 났다. 후배는 그녀의 옷차림을 농담 삼곤 했지만, 그러면서도 그녀가 입는 옷과 비슷한 것들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녀도 그려러니 했다. 가끔은 '그럴 돈으로 먼저 저축을 하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치졸한 생각도 들었다. 젊고 환한 후배가 옷에 관심이 많은 건 자연스러운 일인데도 말이다. 후배는 그녀의 말투도 따라했다. 원래 말이란 주인이 없고, 오염되고, 공유되기 마련인 것이지만 후배의 입에서 자신이 즐겨 쓰는 어휘나 농담이 튀어나올 때마다 뭔가 도둑맞은 기분을 느꼈다. 그녀는 후배가 종일 자신의 노트북 앞에 앉아 있는 것도 신경 쓰였다. 자신이 많은 시간에 걸쳐 정성스럽게 '즐겨찾기'해 놓은 목록들을 너무 쉽게 돌아다니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특히 따로 분류해 놓은 음악, 영화, 독서, 철학 사이트들을 돌아다니며 아는 체를 하는 것이 불편했다. 후배는 음악을 잘 모르는데, 후배의 미니홈피에 자신이 좋아하는 밴드의 노래가 배경음악으로 깔려 있는 걸 보고 무시하는 마음이 들었던 때도 있었다. 그녀는 온라인 세계에서조차 혼자 있을 공간이 없다고 느꼈다.
* 첨삭 : 글의 내용 일부를 보태거나 삭제하여 고침.
* 옹이 : '굳은 살'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문제>
1. 후배와의 공동생활이 어려워진 것은 어떤 이유에서인가?
2. 밑줄 친 부분과 같은 종류의 '도둑맞은 기분'은 왜 생기는 것인지, 여러분의 생각을 발전시켜 보시오.
3. 어떤 사람을 모방하고자 하는 심리는 왜 생기는 것인가?
4. 만약 여러분이 그녀라면 앞으로 어떻게 하겠는가?
5. 우리는 타인을 이해할 수 있는가?
* 5번 문제는 바칼로레아 철학 기출문제입니다.^^ 이 지문과 함께 생각해볼 수 있는 문제라 생각하여 넣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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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예시답안입니다. 참고하세요.
1. 후배와 함께 살면서 자연스럽게 그녀의 단점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후배가 자신의 고유한 개성이라고 믿는 언어 습관이나 취향, 지키고 싶은 사생활의 영역까지 침범하게 되면서 그녀에 대한 호의는 급속도로 냉각되었다.
2. 한 개인의 역사는 그냥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장시간의 생각과 시행착오를 거듭한 결과, 자연스럽게 드러나게 된 모습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그것이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우리는 그것을 '나다운' 것으로 간주하게 된다. 그런데 타인이 그것을 아무렇지 않게 모방한다면 도둑맞은 기분이 들 수 있다. 더욱이 그것이 획기적인 생각이거나 시나 소설처럼 창의적인 작품이거나 혹은 흉내낼 수 없는 스타일이라고 한다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그것은 다른 사람이 10년에 걸쳐 이뤄낸 노고를 10분만에 훔치는 일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되고 싶어한다. 누군가를 닮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가도 궁극적으로는 다른 사람과 구별되는 무언가를 갖고자 하는 것이 우리의 근원적인 욕망인 것 같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주인공이 후배에게 느끼는 감정은 분리할 수 없는 것을 억지로 나눠써야 하는 기분 아니었을까? 주인공은 자신에게 소유권이 있으므로 사용권도 역시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3. 좋아하거나 존경하는 사람이 있으면 자연스럽게 상대방의 말투나 생각을 따라하게 된다. 그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우리는 그렇게 함으로써 상대와 가까워졌다는 느낌을 받는다. 특히 자아가 다듬어지지 않은 시기에는 여러 사람을 역할 모델로 삼아 모방하게 된다. 타인을 통해서 차차 나의 진면목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누가 나를 닮고 싶어한다면 그것 만한 영광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곧 내가 모방해도 될 만큼, 가치있는 사람이라는 점을 드러내는 일이다. 더욱이 그 사람이 나를 따라한다고 해서 나의 고유한 측면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두려워하거나 기분나빠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생각한다.
4. 나는 가능하면 다른 사람과 공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고, 스스로도 좋아하는 편이다. 따라서 후배가 내 컴퓨터의 음악을 듣거나 다운받아 놓은 영화를 보는 것은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단 그것을 사용하기 전에 한 마디 말이라도 해주기를 바란다. 그렇다면 나도 기분좋게 내가 가진 것을 나누어줄 수 있다. 주인공이 후배를 싫어하게 된 것은 후배의 방식이 '일방통행' 식이고, 실수를 습관적으로 반복하기 때문에 못 미더워진 탓이다. 나라면 내가 허용할 수 있는 것과 허용하지 못하는 부분에 대하여 처음부터 솔직하고, 단호하게 이야기하겠다. 그리하여 후배가 나를 이해하고 존중할 수 있도록 하겠다.
또한 내가 주인공이라면 후배가 자신의 취향을 찾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고, 격려할 것이다. 처음부터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알고, 자신의 취향을 파악하는 사람은 드물기 때문이다. 좀 더 넉넉한 시선으로 후배를 보고, 후배의 변화를 기다려 보겠다.
2012년 2월 24일 금요일
한국어 bac 응용문제 소설 편 4.
나는 여기가 좋다
한창훈 (2006)
훌륭한 선장. 어쩌면 그것은 훌륭한 남편이 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것인지 모른다. 어떻게 해야 훌륭한 남편이, 아버지가 되는지 알 듯하면서도 번번이 잘 모르듯, 그는 자신이 훌륭한 선장이 되는 법을 전혀 모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생선 잘 잡는 선장? 파도 잘 타는 선장? 풍랑에 겁 안 먹는 선장? 배를 잘 관리하는 선장? 안방에 하루 누워있는 것보다 파도치는 바다 한가운데 열흘 떠 있는 것을 선택하는 선장?
물론 그는 늘 그랬다. 그 모든 것에서 남들보다 나았다. 그런데 훌륭한 선장은 못된 듯하다. 훌륭한 선장은 끝까지 제 배를 포기하지 않는 이 아닌가.
"잘 모르겄어. 내가 바다를 좋아하는지."
"습관이요."
"그러겄지. 배 타는 것 말고는 하나도 안 해봤으니까."
"그랬소, 당신은. 늘 바다와 배만 보고 살았소. 그러다 이렇게 된 거요. 인자 여기서 뭘 어떻 게 하겄소?"
"흐음."
"사실 옛날부터 이 말이 하고 싶었소이. 그런데 바다와 배를 쳐다보는 당신 눈빛이 불타는 것 같어서 미루고 또 미루었소. 이 배 지을 때, 내 말 안 듣고 빚 얻어 이렇게 크게 지을 때, 그때는 혼자 밤도망이라도 치고 싶었소. 그런데, 차마 못했소, 내가 먼저 판은 깨지 말아야겠어서."
"그랬는가?"
"배 놓을 때도 참았소. 배만 팔리면, 배만 팔리면 빚도 좀 줄어들 테고 그때 말하자, 했었소."
"그래, 그랬을 것 같네, 고생 너무 시켜 미안하네."
"지금이 그때요. 인자는 이렇게는 못 살겄소. 난 갈 거요."
- 중략 -
"싫소, 그만 갑시다."
"한 상자는 채워야지."
"한 상자 채워서 뭐할라고."
"당신이랑 아그들이랑 묵으라고."
"내가 고기 잡아달랍디까? 잡아주믄 좋아서 춤이라도 출 줄 알았소?"
"그래도 잡아노면 누가 묵어도 묵지."
"이제 새끼들하고 어떡해서든 살 궁리 해봐야 할 판국에 이 고기 한 상자 어딨다 쓰겄소."
"내가 해줄 것이 뭐 있간디."
글쎄, 좀 뜬금없기는 하지만 이런 밤, 어찌되었든 그는 이 짓 말고는 할 게 없기는 했다.
"뭘, 해주고 싶소?"
"......"
"그럼 여기 깨끗하게 정리하고 같이 가자니깐."
"가서 난 뭘 하고."
"영화 아부지. 당신 아직 안 늙었소."
"안 늙어서 그래, 뭘 하라고."
"요즘은 환갑도 너무 젊어 잔치 안 하요이. 근디 인자 오십이요. 당신 근력이믄 육지 가서 뭘
못 하겄소."
"나보고 노가다 하라 그 말인가?"
"나도 당신이 노가다 같은 것 하믄 싫지만, 그렇지만, 노가다라도 해볼 생각을 해야지. 이 섬 에서 뭘로 산다고 미련을 못 버리요. 인자 배도 읎는 사람이."
<문제>
1. 두 인물은 왜 갈등하고 있는가?
2. 주인공이 훌륭한 선장이 되지 못했다고 한 이유는?
3. 이 소설은 남부 지방의 사투리(지역어)로 쓰여져 정감을 더해준다. 이번에는 밑줄 친 부분을 현대식 표준어로 바꿔보시오.
4. 뒷 이야기를 상상하여 부부의 대화를 완성해 보시오. (4 문장 이상)
한창훈 (2006)
훌륭한 선장. 어쩌면 그것은 훌륭한 남편이 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것인지 모른다. 어떻게 해야 훌륭한 남편이, 아버지가 되는지 알 듯하면서도 번번이 잘 모르듯, 그는 자신이 훌륭한 선장이 되는 법을 전혀 모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생선 잘 잡는 선장? 파도 잘 타는 선장? 풍랑에 겁 안 먹는 선장? 배를 잘 관리하는 선장? 안방에 하루 누워있는 것보다 파도치는 바다 한가운데 열흘 떠 있는 것을 선택하는 선장?
물론 그는 늘 그랬다. 그 모든 것에서 남들보다 나았다. 그런데 훌륭한 선장은 못된 듯하다. 훌륭한 선장은 끝까지 제 배를 포기하지 않는 이 아닌가.
"잘 모르겄어. 내가 바다를 좋아하는지."
"습관이요."
"그러겄지. 배 타는 것 말고는 하나도 안 해봤으니까."
"그랬소, 당신은. 늘 바다와 배만 보고 살았소. 그러다 이렇게 된 거요. 인자 여기서 뭘 어떻 게 하겄소?"
"흐음."
"사실 옛날부터 이 말이 하고 싶었소이. 그런데 바다와 배를 쳐다보는 당신 눈빛이 불타는 것 같어서 미루고 또 미루었소. 이 배 지을 때, 내 말 안 듣고 빚 얻어 이렇게 크게 지을 때, 그때는 혼자 밤도망이라도 치고 싶었소. 그런데, 차마 못했소, 내가 먼저 판은 깨지 말아야겠어서."
"그랬는가?"
"배 놓을 때도 참았소. 배만 팔리면, 배만 팔리면 빚도 좀 줄어들 테고 그때 말하자, 했었소."
"그래, 그랬을 것 같네, 고생 너무 시켜 미안하네."
"지금이 그때요. 인자는 이렇게는 못 살겄소. 난 갈 거요."
- 중략 -
"싫소, 그만 갑시다."
"한 상자는 채워야지."
"한 상자 채워서 뭐할라고."
"당신이랑 아그들이랑 묵으라고."
"내가 고기 잡아달랍디까? 잡아주믄 좋아서 춤이라도 출 줄 알았소?"
"그래도 잡아노면 누가 묵어도 묵지."
"이제 새끼들하고 어떡해서든 살 궁리 해봐야 할 판국에 이 고기 한 상자 어딨다 쓰겄소."
"내가 해줄 것이 뭐 있간디."
글쎄, 좀 뜬금없기는 하지만 이런 밤, 어찌되었든 그는 이 짓 말고는 할 게 없기는 했다.
"뭘, 해주고 싶소?"
"......"
"그럼 여기 깨끗하게 정리하고 같이 가자니깐."
"가서 난 뭘 하고."
"영화 아부지. 당신 아직 안 늙었소."
"안 늙어서 그래, 뭘 하라고."
"요즘은 환갑도 너무 젊어 잔치 안 하요이. 근디 인자 오십이요. 당신 근력이믄 육지 가서 뭘
못 하겄소."
"나보고 노가다 하라 그 말인가?"
"나도 당신이 노가다 같은 것 하믄 싫지만, 그렇지만, 노가다라도 해볼 생각을 해야지. 이 섬 에서 뭘로 산다고 미련을 못 버리요. 인자 배도 읎는 사람이."
<문제>
1. 두 인물은 왜 갈등하고 있는가?
2. 주인공이 훌륭한 선장이 되지 못했다고 한 이유는?
3. 이 소설은 남부 지방의 사투리(지역어)로 쓰여져 정감을 더해준다. 이번에는 밑줄 친 부분을 현대식 표준어로 바꿔보시오.
4. 뒷 이야기를 상상하여 부부의 대화를 완성해 보시오. (4 문장 이상)
2012년 2월 15일 수요일
한국어 bac 응용문제 소설 편 3.
스타일
백영옥(2008)
나는 아침마다 은영에게 물었다.
"내 얼굴 어제보다 부어 보여? 바지 너무 꼭 끼는 것 같지 않니? 어쩌지? 살쪘나봐!"
나의 동거녀는 늘 지겹다는 얼굴로 말했다. 아랫배 2킬로그램, 허벅지 3킬로그램, 엉덩이 2킬로그램, 도합 7킬로그램 감량해야겠네,라고.
내 몸무게는 3년째 56킬로그램이다. 3년 동안 나는 55사이즈를 입었다. 사이즈가 66으로 늘어나면 조용히 욕실에 들어가 수건으로 목을 맬지도 모른다. 보통 166센티미터에 56킬로그램의 여자는 비만해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56킬로그램은 날씬해 보이지도 않는다는 사실이다. 피트니스 클럽에서 '온 스타일' 채널을 보며 자전거 바퀴를 돌리거나, 스텝퍼 위에서 절대로 내려오지 않는 여자들, 특히 러닝 머신 위에서 생수를 마시며 비지땀을 흘리는 여자들은 절대로 뚱뚱하지 않다. 그들은 비만 극복을 위해 피트니스 클럽에 오는 게 아니다. 그들의 목적은 하나다. 지금보다 조금 더 마르기. 한 마디로 말라 비틀어지기이다. 47킬로그램의 여자는 자신이 45킬로그램의 여자보다 뚱뚱하다고 생각한다. 45킬로그램의 여자는 자신이 왜 배우 김민희나 모델 장윤주처럼 가는 다리가 아닌지 탄식한다. 세상에 자신이 충분히 말랐다고 생각하는 여자는 없다. 도시 여자들의 대부분은 '나는 너무 뚱뚱해'라는 이름의 집단 정신병에 걸려 있다.
마르지 않으면 비난 받는 패션계에서 10여 년을 일하는 동안 내게 남은 것 또한 뚱뚱한 내 몸에 대한 저주이다. 이 시대의 디자이너들은 악마다. 그리고 나는 악마의 유혹을 뿌리칠 수 있는 천사가 아니다. 그냥 평범하고 속물적인 여자일 뿐이다.
에디 슬리먼! 21세기의 기념비적인 이 남성복 디자이너는 인간 신체가 어디까지 쪼그라들 수 있는지를 실험한 위대한 형태학자이다. 그는 할리우드 배우 케이트 모스나 기네스 펠트로처럼 병적으로 마른 21세기형 소수 우량족들만 소화할 수 있는 '슈퍼 스키니'라는 새로운 패션 장르를 개발해, 모든 남자들과 여자들을 다이어트 강박증 환자로 만든 세계적인 고문 기술자이기도 하다.
그는 '다이어트교'라는 신흥종교의 교주이며, 80년대 펑키와 로맨티시즘 시대의 미술품 애호가이기도 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아티스트의 위대한 점은 자신의 룰을 본인에게도 엄격히 적용했다는 것에 있다. 에디 슬리먼은 분유만 먹는 다이어트를 감행했다. 덕분에 그는 자신이 애호하는 뼈만 남은 시체의 형상으로 다시 태어났다. 그의 사진을 들여다보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안구가 쏟아져 나올 듯 퀭한 눈, 푸욱 팬 볼, 이쑤시개 같은 몸. 그럼에도 불구하고 활기차게 움직이는 가느다란 손가락은 자신의 옷을 완성시켜줄 뮤즈를 향해 끊임없이 카메라 셔터를 눌러댄다. 데이비드 보위 같은 80년대 록 스타풍의 말라깽이들과 여자보다 아름다운 남자들을 향해서 말이다.
중요한 건 골다공증, 소화불량, 거식증, 만성두통 같은 현대병을 백 개 정도 가지고 있을 것 같은 그의 몸을 해체했다 다시 조합하면 그게 병적일 정도로 퇴폐적이고 멋져 보인다는 사실이다.(패션 잡지들은 그렇다고 설교한다.)
에디 슬리먼의 옷을 입은 남자 모델들을 보면 황홀하다. 영화배우 강동원은 얼마나 멋진가. 이번 달 화보를 장식한 그의 옷들, 특히 가느다란 팔과 다리에 피부처럼 달라붙어 있는 그 옷들은 모두 에디 슬리먼의 작품이다. 말라 비틀어져서라도 그 옷을 입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히는 건 어찌 되었든 그가 만든 옷이 멋지기 때문이다.
에디 슬리먼의 옷은 성별과 나이를 초월한다. 니콜 키드먼 역시 그가 만든 셔츠를 즐겨 입었고, 동종업계의 경쟁자인 샤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칼 라거펠트는 음식을 조절하며 몸무게를 무려 42킬로그램이나 뺐다. 라거펠트는 살리에르처럼 모차르트를 질투하다 머리가 돌아버리는 대신, 젊고 시니컬한 패션 천재를 사랑하는 쪽을 택했다. 살도 빼고, 예쁜 옷도 입고, 정말 영리하다.
에디 슬리먼이 만든 옷을 입겠다고 나선 사람은 내 주변에도 많다. 내가 아는 어떤 '여자(남자가 아니라)'는 지방흡입 수술을 받았다. 남자들은 굶기 시작했고, 모델들은 죽기 시작했다. 디자이너들이 경쟁적으로 작은 옷들만 만들었기 때문이다. 패션계 전체가 각성해야 한다고 외치면서도 그가 만든 옷을 입겠다고 손을 번쩍 든 사람들의 숫자는 수도 없이 많다.
<문제>
1. 화자가 다이어트를 종교에 비유한 이유는 무엇인가?
2. 현대 사회에서 '뚱뚱하다'는 것은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인지 쓰시오.
3. 에디 슬리먼이 만든 옷이 맞는 사람은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그 옷을 입기 위하여 지방흡입 수술을 받거나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이 있다면 어떤 얘기를 해주고 싶은지 자유롭게 쓰시오.
4. '스타일'이란 무엇인가? 여러분 각자의 생각을 적어보시오.
백영옥(2008)
나는 아침마다 은영에게 물었다.
"내 얼굴 어제보다 부어 보여? 바지 너무 꼭 끼는 것 같지 않니? 어쩌지? 살쪘나봐!"
나의 동거녀는 늘 지겹다는 얼굴로 말했다. 아랫배 2킬로그램, 허벅지 3킬로그램, 엉덩이 2킬로그램, 도합 7킬로그램 감량해야겠네,라고.
내 몸무게는 3년째 56킬로그램이다. 3년 동안 나는 55사이즈를 입었다. 사이즈가 66으로 늘어나면 조용히 욕실에 들어가 수건으로 목을 맬지도 모른다. 보통 166센티미터에 56킬로그램의 여자는 비만해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56킬로그램은 날씬해 보이지도 않는다는 사실이다. 피트니스 클럽에서 '온 스타일' 채널을 보며 자전거 바퀴를 돌리거나, 스텝퍼 위에서 절대로 내려오지 않는 여자들, 특히 러닝 머신 위에서 생수를 마시며 비지땀을 흘리는 여자들은 절대로 뚱뚱하지 않다. 그들은 비만 극복을 위해 피트니스 클럽에 오는 게 아니다. 그들의 목적은 하나다. 지금보다 조금 더 마르기. 한 마디로 말라 비틀어지기이다. 47킬로그램의 여자는 자신이 45킬로그램의 여자보다 뚱뚱하다고 생각한다. 45킬로그램의 여자는 자신이 왜 배우 김민희나 모델 장윤주처럼 가는 다리가 아닌지 탄식한다. 세상에 자신이 충분히 말랐다고 생각하는 여자는 없다. 도시 여자들의 대부분은 '나는 너무 뚱뚱해'라는 이름의 집단 정신병에 걸려 있다.
마르지 않으면 비난 받는 패션계에서 10여 년을 일하는 동안 내게 남은 것 또한 뚱뚱한 내 몸에 대한 저주이다. 이 시대의 디자이너들은 악마다. 그리고 나는 악마의 유혹을 뿌리칠 수 있는 천사가 아니다. 그냥 평범하고 속물적인 여자일 뿐이다.
에디 슬리먼! 21세기의 기념비적인 이 남성복 디자이너는 인간 신체가 어디까지 쪼그라들 수 있는지를 실험한 위대한 형태학자이다. 그는 할리우드 배우 케이트 모스나 기네스 펠트로처럼 병적으로 마른 21세기형 소수 우량족들만 소화할 수 있는 '슈퍼 스키니'라는 새로운 패션 장르를 개발해, 모든 남자들과 여자들을 다이어트 강박증 환자로 만든 세계적인 고문 기술자이기도 하다.
그는 '다이어트교'라는 신흥종교의 교주이며, 80년대 펑키와 로맨티시즘 시대의 미술품 애호가이기도 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아티스트의 위대한 점은 자신의 룰을 본인에게도 엄격히 적용했다는 것에 있다. 에디 슬리먼은 분유만 먹는 다이어트를 감행했다. 덕분에 그는 자신이 애호하는 뼈만 남은 시체의 형상으로 다시 태어났다. 그의 사진을 들여다보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안구가 쏟아져 나올 듯 퀭한 눈, 푸욱 팬 볼, 이쑤시개 같은 몸. 그럼에도 불구하고 활기차게 움직이는 가느다란 손가락은 자신의 옷을 완성시켜줄 뮤즈를 향해 끊임없이 카메라 셔터를 눌러댄다. 데이비드 보위 같은 80년대 록 스타풍의 말라깽이들과 여자보다 아름다운 남자들을 향해서 말이다.
중요한 건 골다공증, 소화불량, 거식증, 만성두통 같은 현대병을 백 개 정도 가지고 있을 것 같은 그의 몸을 해체했다 다시 조합하면 그게 병적일 정도로 퇴폐적이고 멋져 보인다는 사실이다.(패션 잡지들은 그렇다고 설교한다.)
에디 슬리먼의 옷을 입은 남자 모델들을 보면 황홀하다. 영화배우 강동원은 얼마나 멋진가. 이번 달 화보를 장식한 그의 옷들, 특히 가느다란 팔과 다리에 피부처럼 달라붙어 있는 그 옷들은 모두 에디 슬리먼의 작품이다. 말라 비틀어져서라도 그 옷을 입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히는 건 어찌 되었든 그가 만든 옷이 멋지기 때문이다.
에디 슬리먼의 옷은 성별과 나이를 초월한다. 니콜 키드먼 역시 그가 만든 셔츠를 즐겨 입었고, 동종업계의 경쟁자인 샤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칼 라거펠트는 음식을 조절하며 몸무게를 무려 42킬로그램이나 뺐다. 라거펠트는 살리에르처럼 모차르트를 질투하다 머리가 돌아버리는 대신, 젊고 시니컬한 패션 천재를 사랑하는 쪽을 택했다. 살도 빼고, 예쁜 옷도 입고, 정말 영리하다.
에디 슬리먼이 만든 옷을 입겠다고 나선 사람은 내 주변에도 많다. 내가 아는 어떤 '여자(남자가 아니라)'는 지방흡입 수술을 받았다. 남자들은 굶기 시작했고, 모델들은 죽기 시작했다. 디자이너들이 경쟁적으로 작은 옷들만 만들었기 때문이다. 패션계 전체가 각성해야 한다고 외치면서도 그가 만든 옷을 입겠다고 손을 번쩍 든 사람들의 숫자는 수도 없이 많다.
<문제>
1. 화자가 다이어트를 종교에 비유한 이유는 무엇인가?
2. 현대 사회에서 '뚱뚱하다'는 것은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인지 쓰시오.
3. 에디 슬리먼이 만든 옷이 맞는 사람은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그 옷을 입기 위하여 지방흡입 수술을 받거나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이 있다면 어떤 얘기를 해주고 싶은지 자유롭게 쓰시오.
4. '스타일'이란 무엇인가? 여러분 각자의 생각을 적어보시오.
한국어 bac 응용문제 소설 편 2와 예시답안
뉴욕제과점 (소설집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수록작품)
김연수(2002)
내가 아는 한 마지막 기회가 뉴욕제과점에 찾아왔다. 김영삼 대통령이 세계화를 주창할 때만 해도 그게 무슨 소리인지 알 수 없었는데, 파리크라상이나 크라운베이커리 같은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빵집이 그 작은 도시에도 생기고 나서야 우리는 그게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었다. 내가 봐도 그런 가게에서 파는 빵과 비교해 뉴욕제과점의 빵은 형편없었다. 뉴욕제과점과 함께 빵 장사를 시작했던 다른 가게들이 하나둘 파리크라상이나 크라운베이커리 같은 가게로 바뀌거나 업종을 전환했다. 그러나 뉴욕제과점은 꿋꿋하게 1980년대풍으로 그 자리를 지켰다. 이젠 더 이상 새롭게 바뀔 만한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뉴욕제과점은 우리 삼남매가 아이에서 어른으로 자라는 동안 필요한 돈과 어머니 수술비와 병원비와 약값만을 만들어내고는 그 생명을 마감할 처지에 이르렀다. 어머니는 며칠에 한 번씩 팔지 못해서 상한 빵들을 검은색 봉투에 넣어 쓰레기와 함께 내다버리고는 했다. 예전에는 막내아들에게도 빵을 주지 않던 분이었는데, 기레빠시(빵 부스러기)도 버리지 않고 먹던 분이었는데. 그 모습을 바라보는 심정은 매우 처참했다. 어차피 인생은 그런 것이었던가? 어머니의 자존심은 빵을 팔지 못해 버린다는 사실을 남들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비닐봉투에 꽁꽁 묶어서 버리는 정도로만 남아 있었다. 그나마도 집 잃은 고양이들이 빵 냄새를 맡고 쓰레기 봉투를 죄다 뒤져놓아 청소차가 다니는 새벽이면 가게 앞 거리에 빵 봉지가 난무했기 때문에 눈치채지 못할 사람이 없었다.
그래도 어머니는 가게를 그만두겠다는 말만은 하지 않았다. 그저 내게 말한 것처럼 어느 해 여름에는 빙수를 얼마나 많이 팔았었는지, 어느 해 크리스마스에는 케이크를 얼마나 많이 팔았었는지, 어떤 기술자가 얼마나 속을 썩였는지 그런 말씀뿐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어머니도 당신이 문을 연 뉴욕제과점이 이제 그 생명을 다했다는 사실을 납득하는 것 같았다. 그런 사실을 납득하는 게 과연 어떤 기분일까? 나로서는 상상이 가질 않았다.
대학을 졸업한 그해, 처음으로 돈을 벌기 위해 아등바등 애를 쓰던 어느 날 고향에서 전화가 왔다. 뉴욕제과점을 다른 사람에게 팔았다는 소식이었다. 새로 인수한 사람은 그 자리에 기차 승객들을 상대로 한 24시간 국밥집을 차린다고 했다. 나는 잘됐다고 말했다. 뉴욕제과점이 문을 열 때도 나는 거기에 없었는데, 문을 닫을 때도 그 광경을 보지 못했다. 나는 국밥집이 된 뉴욕제과점 자리를 상상해봤다. 잘 상상이 되지 않았다. 이제 이 세상 어디에도 뉴욕제과점은 없다고 생각하니 조금 쓸쓸한 기분이 들었다. - 중략 -
사탕을 넣어둔 유리항아리 뚜껑을 자꾸만 열어대는 아이처럼 나는 빤히 보이는 그 불빛들이 그리워 자꾸만 과거 속으로 내달았다. 추억 속에서 조금씩 밝혀지는 그 불빛들의 중심에는 뉴욕제과점이 늘 존재한다. 내가 태어나서 자라고 어른이 되는 동안, 뉴욕제과점이 있었다는 사실이 내게는 얼마나 큰 도움이 됐는지 모른다. 그리고 이제는 뉴욕제과점이 내게 만들어준 추억으로 나는 살아가는 셈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뭔가가 나를 살아가게 한다니 놀라운 일이었다. 그 다음에 나는 깨달았다. 이제 내가 살아갈 세상에 괴로운 일만 남은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나도 누군가에게 내가 없어진 뒤에도 오랫동안 위안이 되는 사람으로 남을 수 있게 되리라는 것을 알게 됐다. 삶에서 시간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그저 보이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라는 사실을, 이 세상에서 사라졌다고 믿었던 것들이 실은 내 안에 고스란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나는 깨닫게 됐다.
* 세계화 : 세계화(Globalization)란 국가 및 지역 간에 존재하던 상품, 서비스, 자본, 노동, 정보 등에 대한 인위적 장벽이 제거되어 세계가 거대한 단일시장으로 통합되어 나가는 현상을 말함.
<문제>
1. 어머니가 빵을 버린 이유는 무엇인가?
2. 뉴욕제과점이 문을 닫은 이유는 무엇인가?
3. 밑줄 친 문장 속에 담긴 의미를 해석하고, 학생 나름대로 생각을 발전시켜 보시오.
4. 뉴욕제과점의 예를 통해 알 수 있는 세계화의 폐해(문제점)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적어보시오.
-----------------------------------
학생 예시답안입니다. 참고하세요.
1. 제과점의 장사가 안 되어 팔다 남은 빵을 주기적으로 처분할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는 이웃들이 이 사실을 아는 것이 싫어 검은 비닐 봉투에 빵을 넣어 버렸다.
2. 변하는 시대에 적응하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원인이다. 다른 빵집들이 발빠르게 대형 빵집 체인점으로 모습을 바꾸는 동안, 뉴욕 제과점은 옛날 방식을 고수했다. 그 결과 경쟁에서 밀린 것이다. 자본력을 앞세운 체인 빵집들이 화려한 외관과 인상적인 맛으로 소비자를 유혹했다면 뉴욕제과점은 어떤 새로운 시도도 하지 않음으로써 스스로 도태의 길을 걷게 된 셈이다.
3. 우리가 어떤 장소를 기억할 때 떠올리는 것은 건물의 모양새나, 위치, 혹은 주변 풍광에 국한되지 않는다. 우리에게 어떤 장소가 특별하다면 그것은 그곳과 관련된 추억이 있기 때문이다. 달리 말해 추억이 사라지지 않는 한, 그 장소는 영원하다고 할 수 있다. 뉴욕제과점에서 태어나 성장한 주인공이 물리적으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된 그곳에 대하여 고마움과 향수를 간직하고 있듯이 말이다.
장소가 단순히 사람이 거하는 곳이라면 우리가 그 장소를 오래도록 추억하겠는가? 장소는 언제든지 용도 변경이 가능하고, 심지어 사라질 수도 있는 것이다. 가령 기억을 잃어가고 있는 노인이 있다고 하자. 그런데 노인은 어린 시절을 보냈던 동네 풍경을 몇십 년이 지난 지금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것은 어떤 이유에서인가. 기억과 추억은 차원이 다르다. 기억은 기억하지 않으려 해도 뇌리 속에 남는 것이라면 '추억한다'는 것은 매우 의식적이고 의지적인 행위이다. 추억은 설령 그 장소가 사라지더라도 결코 약해지거나 지워지지 않는다. 우리가 추억을 질리도록 꺼내보고, 의식 안에서 언제든 추억의 장소로 되돌아갈 수 있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에서이다.
4. 세계화가 모두에게 나쁜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부의 분배에 있어서 공평하지 않고, 부자는 더 부자가 되고, 가난한 이는 더 가난하게 되는 구조를 공고히 한다는 점이다. 뉴욕제과점은 지역의 빵집으로서 전통을 이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세계화 시대의 경쟁 논리에 맞춰 발빠르게 대처하지 못했고, 그 결과 퇴락의 길을 걷게 된 것이다. 대신 지역 사회에는 비슷비슷한 대형 빵집 체인들이 들어서게 되었다. 이렇게 되면 소비자들은 선택의 여지가 없다. 뉴욕제과점의 빵을 좋아해도 살 기회가 없어지는 것이다.
세계화 시대에 걸맞는 경쟁력을 갖춘다는 것은 어찌 보면 하나의 기준, 하나의 정해진 틀에 억지로 끼워맞출 것을 요구당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소규모이지만 다양한 모습으로 선의의 경쟁을 벌였던 뉴욕제과점과 이웃 빵집들이 문을 닫거나 대기업에 흡수되는 방식으로 생명을 다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세계화의 이면, 그 폭력성 때문이라고 해야 겠다.
김연수(2002)
내가 아는 한 마지막 기회가 뉴욕제과점에 찾아왔다. 김영삼 대통령이 세계화를 주창할 때만 해도 그게 무슨 소리인지 알 수 없었는데, 파리크라상이나 크라운베이커리 같은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빵집이 그 작은 도시에도 생기고 나서야 우리는 그게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었다. 내가 봐도 그런 가게에서 파는 빵과 비교해 뉴욕제과점의 빵은 형편없었다. 뉴욕제과점과 함께 빵 장사를 시작했던 다른 가게들이 하나둘 파리크라상이나 크라운베이커리 같은 가게로 바뀌거나 업종을 전환했다. 그러나 뉴욕제과점은 꿋꿋하게 1980년대풍으로 그 자리를 지켰다. 이젠 더 이상 새롭게 바뀔 만한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뉴욕제과점은 우리 삼남매가 아이에서 어른으로 자라는 동안 필요한 돈과 어머니 수술비와 병원비와 약값만을 만들어내고는 그 생명을 마감할 처지에 이르렀다. 어머니는 며칠에 한 번씩 팔지 못해서 상한 빵들을 검은색 봉투에 넣어 쓰레기와 함께 내다버리고는 했다. 예전에는 막내아들에게도 빵을 주지 않던 분이었는데, 기레빠시(빵 부스러기)도 버리지 않고 먹던 분이었는데. 그 모습을 바라보는 심정은 매우 처참했다. 어차피 인생은 그런 것이었던가? 어머니의 자존심은 빵을 팔지 못해 버린다는 사실을 남들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비닐봉투에 꽁꽁 묶어서 버리는 정도로만 남아 있었다. 그나마도 집 잃은 고양이들이 빵 냄새를 맡고 쓰레기 봉투를 죄다 뒤져놓아 청소차가 다니는 새벽이면 가게 앞 거리에 빵 봉지가 난무했기 때문에 눈치채지 못할 사람이 없었다.
그래도 어머니는 가게를 그만두겠다는 말만은 하지 않았다. 그저 내게 말한 것처럼 어느 해 여름에는 빙수를 얼마나 많이 팔았었는지, 어느 해 크리스마스에는 케이크를 얼마나 많이 팔았었는지, 어떤 기술자가 얼마나 속을 썩였는지 그런 말씀뿐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어머니도 당신이 문을 연 뉴욕제과점이 이제 그 생명을 다했다는 사실을 납득하는 것 같았다. 그런 사실을 납득하는 게 과연 어떤 기분일까? 나로서는 상상이 가질 않았다.
대학을 졸업한 그해, 처음으로 돈을 벌기 위해 아등바등 애를 쓰던 어느 날 고향에서 전화가 왔다. 뉴욕제과점을 다른 사람에게 팔았다는 소식이었다. 새로 인수한 사람은 그 자리에 기차 승객들을 상대로 한 24시간 국밥집을 차린다고 했다. 나는 잘됐다고 말했다. 뉴욕제과점이 문을 열 때도 나는 거기에 없었는데, 문을 닫을 때도 그 광경을 보지 못했다. 나는 국밥집이 된 뉴욕제과점 자리를 상상해봤다. 잘 상상이 되지 않았다. 이제 이 세상 어디에도 뉴욕제과점은 없다고 생각하니 조금 쓸쓸한 기분이 들었다. - 중략 -
사탕을 넣어둔 유리항아리 뚜껑을 자꾸만 열어대는 아이처럼 나는 빤히 보이는 그 불빛들이 그리워 자꾸만 과거 속으로 내달았다. 추억 속에서 조금씩 밝혀지는 그 불빛들의 중심에는 뉴욕제과점이 늘 존재한다. 내가 태어나서 자라고 어른이 되는 동안, 뉴욕제과점이 있었다는 사실이 내게는 얼마나 큰 도움이 됐는지 모른다. 그리고 이제는 뉴욕제과점이 내게 만들어준 추억으로 나는 살아가는 셈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뭔가가 나를 살아가게 한다니 놀라운 일이었다. 그 다음에 나는 깨달았다. 이제 내가 살아갈 세상에 괴로운 일만 남은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나도 누군가에게 내가 없어진 뒤에도 오랫동안 위안이 되는 사람으로 남을 수 있게 되리라는 것을 알게 됐다. 삶에서 시간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그저 보이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라는 사실을, 이 세상에서 사라졌다고 믿었던 것들이 실은 내 안에 고스란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나는 깨닫게 됐다.
* 세계화 : 세계화(Globalization)란 국가 및 지역 간에 존재하던 상품, 서비스, 자본, 노동, 정보 등에 대한 인위적 장벽이 제거되어 세계가 거대한 단일시장으로 통합되어 나가는 현상을 말함.
<문제>
1. 어머니가 빵을 버린 이유는 무엇인가?
2. 뉴욕제과점이 문을 닫은 이유는 무엇인가?
3. 밑줄 친 문장 속에 담긴 의미를 해석하고, 학생 나름대로 생각을 발전시켜 보시오.
4. 뉴욕제과점의 예를 통해 알 수 있는 세계화의 폐해(문제점)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적어보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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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예시답안입니다. 참고하세요.
1. 제과점의 장사가 안 되어 팔다 남은 빵을 주기적으로 처분할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는 이웃들이 이 사실을 아는 것이 싫어 검은 비닐 봉투에 빵을 넣어 버렸다.
2. 변하는 시대에 적응하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원인이다. 다른 빵집들이 발빠르게 대형 빵집 체인점으로 모습을 바꾸는 동안, 뉴욕 제과점은 옛날 방식을 고수했다. 그 결과 경쟁에서 밀린 것이다. 자본력을 앞세운 체인 빵집들이 화려한 외관과 인상적인 맛으로 소비자를 유혹했다면 뉴욕제과점은 어떤 새로운 시도도 하지 않음으로써 스스로 도태의 길을 걷게 된 셈이다.
3. 우리가 어떤 장소를 기억할 때 떠올리는 것은 건물의 모양새나, 위치, 혹은 주변 풍광에 국한되지 않는다. 우리에게 어떤 장소가 특별하다면 그것은 그곳과 관련된 추억이 있기 때문이다. 달리 말해 추억이 사라지지 않는 한, 그 장소는 영원하다고 할 수 있다. 뉴욕제과점에서 태어나 성장한 주인공이 물리적으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된 그곳에 대하여 고마움과 향수를 간직하고 있듯이 말이다.
장소가 단순히 사람이 거하는 곳이라면 우리가 그 장소를 오래도록 추억하겠는가? 장소는 언제든지 용도 변경이 가능하고, 심지어 사라질 수도 있는 것이다. 가령 기억을 잃어가고 있는 노인이 있다고 하자. 그런데 노인은 어린 시절을 보냈던 동네 풍경을 몇십 년이 지난 지금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것은 어떤 이유에서인가. 기억과 추억은 차원이 다르다. 기억은 기억하지 않으려 해도 뇌리 속에 남는 것이라면 '추억한다'는 것은 매우 의식적이고 의지적인 행위이다. 추억은 설령 그 장소가 사라지더라도 결코 약해지거나 지워지지 않는다. 우리가 추억을 질리도록 꺼내보고, 의식 안에서 언제든 추억의 장소로 되돌아갈 수 있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에서이다.
4. 세계화가 모두에게 나쁜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부의 분배에 있어서 공평하지 않고, 부자는 더 부자가 되고, 가난한 이는 더 가난하게 되는 구조를 공고히 한다는 점이다. 뉴욕제과점은 지역의 빵집으로서 전통을 이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세계화 시대의 경쟁 논리에 맞춰 발빠르게 대처하지 못했고, 그 결과 퇴락의 길을 걷게 된 것이다. 대신 지역 사회에는 비슷비슷한 대형 빵집 체인들이 들어서게 되었다. 이렇게 되면 소비자들은 선택의 여지가 없다. 뉴욕제과점의 빵을 좋아해도 살 기회가 없어지는 것이다.
세계화 시대에 걸맞는 경쟁력을 갖춘다는 것은 어찌 보면 하나의 기준, 하나의 정해진 틀에 억지로 끼워맞출 것을 요구당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소규모이지만 다양한 모습으로 선의의 경쟁을 벌였던 뉴욕제과점과 이웃 빵집들이 문을 닫거나 대기업에 흡수되는 방식으로 생명을 다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세계화의 이면, 그 폭력성 때문이라고 해야 겠다.
2012년 2월 10일 금요일
한국어 bac 응용문제 소설 편 1과 예시답안
그녀가 잠 못 드는 이유가 있다 (소설집 '달려라 아비' 수록작품) 김애란(2005)
그녀는 아버지가 화장실에서 돌아오자마자 유선을 끊은 것에 대해 죽도록 후회했다. 리모컨을 만지는 아버지의 당혹스러운 표정은 고사하고, 갑자기 아버지와 '말'을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 어색함. 그 침묵. 저 알 수 없는 표정. 그녀는 아버지의 표정이 새벽에 중계되는 게임 방송처럼 느껴졌다. 벌레처럼 생긴 작은 기계들이 쉴 새 없이 기어다니며 원석을 실어나르고, 무언가 끊임없이 행해지고 있으나 알 수 없는 해설과 열광이 외계어처럼 다가오던 그 낯섦. 진지한 게이머의 얼굴을 보며, 저 사람과 자신은 절대 같은 시간 속에 살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고 느끼던 그 이상하면서도 생경했던 새벽. 그러면서도 채널을 돌리지 않고 그 화면을 계속 바라보고 있던 때. 그녀는 약 한 시간 동안 아버지와의 숨막히는 어색함이 불편해서 어쩔 줄 몰랐다. 그녀는 마음 속으로 외쳤다. ‘아버지, 뭐라고 말씀 좀 해보세요. 텔레비전에 나오는 아버지들은 이런 때 어떤 말을 했던가를.’ 그녀는 평소보다 일찍 잠자리에 누웠다. 그녀가 스위치를 껐을 때, 아버지는 텔레비전 리모컨을 만지작거렸다. A. 그녀는 갑자기 들이닥친 고요 속에서 더 많은 잡생각에 시달렸다. 아버지의 숨소리, 침 삼키는 소리, 바스락거리는 소리는 유난히 크게 들려왔다. 마치 모든 소리를 동원해 자신의 존재를 주장하듯, 아버지는 그렇게 그녀 옆에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실수를 한 것 같았다. 하지만 먼저 해명을 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들은 서로에게 싸움을 걸지 않았다. 그녀는 그렇게 아무 말 없이 유선을 끊어버린 것은 어쩐지 비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그런 화법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녀는 몇 년 전 만났던 한 패션잡지의 편집장을 생각했다. 그녀는 대학생들을 상대로 한 그 잡지에 수필을 싣는 아르바이트를 소개받았다. 그녀가 문예에 조예가 깊었다기보다는 단지 돈이 필요했고, 또 그녀가 맡을 꼭지는 누구나 쓸 수 있는 성격의 글이었다. 그녀가 면접을 보러 갔을 때, 그 편집장은 온화하고 세련된 자세로 그녀를 맞아주었다. 그녀는 교양수업 때 썼던 몇 개의 작품 페이퍼를 놓고 커피를 한 잔 마신 뒤 사무실을 나왔다. 편집장은 그때 그녀에게 “어떤 작가를 좋아하냐?”라고 물었다. 그녀는 어물어물 대답하지 못했다. 편집장은 미소를 지으며 자신은 아무개를 좋아한다 말했다. 그 후로 그녀는 잡지사로부터 어떠한 연락도 받지 못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때 나눴던 평범한 대화가 다르게 번역되기 시작했다. 그녀는 편집장이 ‘나는 아무개 정도는 이해하는 사람이다. 그러니 내가 너를 퇴짜 놓는대도 그것은 부당하지 않다’는 것을 그런 식으로 말한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러자 그녀는 그 사람의 온화함에 홀딱 반할 줄만 알았던 자신이 바보같이 느껴졌다. B. 그녀는 사람들이 A를 그냥 A라고 말하지 왜 C라고 말한 뒤 상대방이 A라고 들어주길 바라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사실 편집장은 아무 의도 없이 질문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 중략 - 그런 그녀가 오늘 아버지에게 대뜸 C라는 카드를 던져놓고 모른 척하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몸을 뒤척이며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자’는 주문을 외웠다. 그러다 곧 그녀는 아버지가 방에만 계신 것은 돈이 없어서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자신도 돈이 없을 땐 나가기도 싫고 친구도 만나기 싫지 않았던가. 그녀는 아버지에게 용돈을 드려볼까 생각했다. 그러면 이불 속에 숨어 있는 저 하반신으로 산책도 하고, 시장도 가고, 훨씬 활동적인 사람이 될 것이다. 그러면 텔레비전도 덜 보게 될 것이고, 그녀도 숙면하게 될지 모른다. 한편으로는 아버지에게 어떤 것도 주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녀는 아버지에게 뭔가 받아본 기억이 없다. 게다가 용돈을 받은 아버지는 자기를 좋아한다고 생각하고 그녀에게 친한 척을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무것도 주지 않은 아버지에게 자신이 무언가 해줄 수 있다면 그것도 멋진 복수이지 않을까. 그녀는 텔레비전이 가족 간의 단절을 야기한다는 말을 믿었다. 그러나 지금 그녀는 만일 대한민국에 텔레비전이라도 없다면 가족 사이는 더 끔찍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깊고 달콤한 잠을 기대했던 오늘밤 왜 이런 생각을 하고 있어야 하는지 짜증이 났다. 그녀는 우선 다시 잠들어보기로 노력했다. 생각해보니 들어오며 뉴트로지나 크림을 사오는 것을 깜빡했다.
<문제>
1. 밑줄 친 A와 같은 상황이 벌어진 이유는 무엇인가?
2. ‘그녀는 사람들이 A를 그냥 A라고 말하지 왜 C라고 말한 뒤 상대방이 A라고 들어주길 바라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라는 문장에 어울리는 예를 하나씩 들어보시오.
3. 주인공 그녀와 아버지의 관계는 어떠한가? 글을 참고하여 써보시오.
4. 텔레비전이 가족 간의 단절을 야기한다는 의견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는지 쓰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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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예시답안입니다. 참고하세요.
1. 딸이 텔레비전의 유선을 끊은데다 밤이라는 고요한 상황까지 겹쳐 주변의 작은 소음마저 크게 들린 것이다.
2. 시험 기간에 일찍 잠들려고 하면 부모님께서 오셔서 "차 한 잔 줄까? 그럼 기분이 나아질 거야."라고 말씀하시거나 평소에는 절대 안 해주시는 어깨 마사지를 해 주신다. 그것은 공부를 더 하고 자라는 무언의 메사지이다. 또한 나의 경우, 친구가 산 옷이 별로라고 생각될 때, "저번에 입은 스타일이 너에게는 더 잘 어울리는 것 같아."라고 돌려 말하기도 한다.
3. 가족 관계이면서도 마치 어려운 손님 같은 느낌을 준다. 아버지는 현재 딸의 집에 얹혀사는 모양이다. 한 방을 사용하는 것으로 보아 두 사람은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으며, 사생활을 지키기도 어려운 상황이라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두 사람은 문제가 있어도 대화를 나누지 않는다. 오로지 침묵과 상상으로 일관함으로써 부녀 사이는 더욱 어색해지고, 벌어진다.
특히 딸이 아버지를 보는 심정이 인상적인데, 딸은 자신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은 아버지에게 무언가를 베품으로써 '복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우리가 가족을 떠올릴 때 갖는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가족, 즉 모든 것을 아낌없이 줄 수 있는 존재라는 환상은 여지 없이 깨져버리는 것이다. 요컨대 지문에 나온 부녀는 함께 살아도 공유할 것이 전혀 없는, 차갑고 피상적인 관계에 머물고 있다.
4. 내가 생각하건대 가족과 함께 텔레비전을 보며 하루의 긴장과 피로를 푸는 가정이라면 아마도 행복한 가정일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이 글에서처럼 하루종일 혼자 TV를 보는 경우이다. 말할 사람도 없고, 들어줄 사람도 없는 가족들 사이에서 TV 시청 이외에 할 일도 없고, 낙도 없는 노인들이 실제로 많다고 들었다. 이런 경우라면 TV가 한 사람의 소일거리는 될지 몰라도 가족 관계를 돈독하게 해줄 가능성은 아주 낮아진다.
하지만 가족 구성원들이 텔레비전 시청 시간을 정해놓고, 좋아하는 프로그램을 골라 함께 본다면 문제가 없다. 우리 가족의 경우, 맞벌이를 하시는 부모님과 나와 두 동생 모두 각자의 생활에 바빠서 식사 시간 외에는 만날 일이 거의 없다. 그런데 우리 가족 모두가 좋아하는 오락 프로그램이 있다. 그때마다 아버지께서 방 안에 있는 우리들을 불러내 함께 보자고 하시는데, 나는 그 시간이 좋다. 텔레비전을 보며 방송 자체에 대해 얘기도 나누지만 자연스럽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부모님의 일상이나 동생들의 고민도 알게 되었다. 이런 경우라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결국 텔레비전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질 것이다. 때문에 텔레비전이 가족 관계를 멀어지게 하는 주범이라는 비판은 합당하지 않다고 본다.
2012년 2월 8일 수요일
많이 틀리는 한글맞춤법 6. 며칠, 몇일, 몇 일 중 무엇이 맞을까요?
'몇 년', '몇 월', '몇 날', '몇 시', '몇 분', '몇 개'는 있어도
'몇 일'이나 '몇일'은 없음에 주의하세요.
'며칠'이 맞습니다. 항상 '며칠'로 표기한다는 것을 알아두세요.
앞에 쓴 '몇 년'이나 '몇 월', '몇 개'를 보면, 띄어쓰기가 되어 있지요?
여기에서의 '몇'은 뒤에 오는 말(ex: '몇 월', '몇 개' 등)과 관련된,
그리 많지 않은 수를 막연하게 이르는 말이에요.
'관형사'라고 하지요.
그런데 "나이가 몇이에요?"에서처럼 단독으로 나오는 경우도 있어요.
이럴 때는 '수사'라고 해요. 수사 '몇'은 정확한 수를 알 수 없을 때,
막연한 숫자 자체를 나타낼 때 쓰지요.
정리하면 '며칠'은 '몇 + 일'과 같은 구조가 아닙니다.
그러니까 '몇 일'은 틀려요. '며칠'이라고 씁니다. ^^
'몇 일'이나 '몇일'은 없음에 주의하세요.
'며칠'이 맞습니다. 항상 '며칠'로 표기한다는 것을 알아두세요.
앞에 쓴 '몇 년'이나 '몇 월', '몇 개'를 보면, 띄어쓰기가 되어 있지요?
여기에서의 '몇'은 뒤에 오는 말(ex: '몇 월', '몇 개' 등)과 관련된,
그리 많지 않은 수를 막연하게 이르는 말이에요.
'관형사'라고 하지요.
그런데 "나이가 몇이에요?"에서처럼 단독으로 나오는 경우도 있어요.
이럴 때는 '수사'라고 해요. 수사 '몇'은 정확한 수를 알 수 없을 때,
막연한 숫자 자체를 나타낼 때 쓰지요.
정리하면 '며칠'은 '몇 + 일'과 같은 구조가 아닙니다.
그러니까 '몇 일'은 틀려요. '며칠'이라고 씁니다. ^^
많이 틀리는 한글맞춤법 5. 가르치다, 가르키다, 가리키다 중 틀린 것은?
발음이 비슷해서 그럴까요?
'가르치다'와 '가리키다'를 혼동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참고로 두 단어를 합친 듯한 '가르키다'라는 말은 존재하지 않아요. ^^
예문을 보겠습니다.
1) 할머니께서 뜨개질하는 법을 가르쳐 주셨다.
-> '교육을 하다'라는 뜻이죠.
2) 예은이가 가리키는 방향을 보니 승화가 서 있었다.
-> '손가락 따위로 어떤 방향이나 대상을 지시한다'는 뜻입니다.
'가르치다'와 '가리키다'를 혼동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참고로 두 단어를 합친 듯한 '가르키다'라는 말은 존재하지 않아요. ^^
예문을 보겠습니다.
1) 할머니께서 뜨개질하는 법을 가르쳐 주셨다.
-> '교육을 하다'라는 뜻이죠.
2) 예은이가 가리키는 방향을 보니 승화가 서 있었다.
-> '손가락 따위로 어떤 방향이나 대상을 지시한다'는 뜻입니다.
한국어 bac 응용문제 7
창가에 꽃이 피던 날
지금 유리창에는 그런 예술이 불가능하다.
얼어붙은 아침, 유리창에는 꽃이 무성했다.
하얗고 춥지만 뜨겁기도 한 기억이다.
이중창 세대인 아이들과 말이 안 통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가...
얘들아, 겨울은 유리창에서부터 온단다.
눈꽃과 함께 말야.
<문제>
1. 이 시의 '창가에 꽃이 핀다'는 표현과 가장 잘 어울리는 단어는?
1) 서리 2) 성에 3) 안개 4) 비 5) 눈
2. 밑줄 친 '하얗고 춥지만 뜨겁기도 한 기억'이라는 표현은 어떤 의미에서 쓰였는가?
3. 지은이는 창가에 핀 꽃을 보면서 겨울을 느낀다. 여러분 각자는 무엇을 통해서 겨울이 왔음을 느끼게 되는지 써보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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